대한민국 택배기업과 근로자는 ‘착한 바보’입니다

입력 2020-12-07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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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고객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물류현장 지켜
택배기업들의 과감한 투자와 근로자들의 헌신적 노력
이제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원해야 할 때
1992년 1월 한진택배가 ‘일관수송업’ 허가를 취득하고 같은 해 처음으로 택배서비스를 선보인 후 국내 택배산업은 빠르게 발전해 왔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려 파죽지세로 시장이 확대됐고,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물류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30여 년간 오로지 고객만을 바라보며 단 한 번의 서비스 파행 없이 ‘영원한 을’의 지위에서 묵묵히 물류현장을 지켜온 택배기업과 근로자들을 ‘착한 바보’라고 일컫는 배경은 이 같은 성실함 덕분이다.

국내 기간산업 시장에 핵심 물류서비스를 제공해 온 동종의 수출입 및 산업화물 운송 담당 컨테이너 화물운송업계의 화물연대는 2003년 첫 대단위 물류대란 파업 이후 지속적인 자기 목소리를 통해 인상된 ‘안전운임제’를 얻었다.

이에 반해 택배산업은 괄목할만한 가격 인상도, 산업시장을 멈추는 과격한 노동환경 개선 요구도 없이 오로지 대국민 서비스 향상과 운영 합리화에만 전력투구해 왔다. 여기엔 일선 택배근로자들의 노고와 역할도 컸지만, 택배기업들의 지속적인 경영 최적화 노력과 끊임없는 운영 개선방안 아이디어 개발, 그리고 수 조원에 이르는 대단위 물류시설 거점과 자동화 장비, IT투자 등이 이어진 덕분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대한민국 땅 끝 마을까지, 1박 2일이면 안방에서 안방으로 안심 배송이 가능한 택배서비스 가격은 고작 2500원에서 3000원에 머물러 있다. 담배 한 갑 가격이 4500원, 분식집 라면 한 그릇 가격이 3000원이다. 1~2km의 짧은 거리 식음료 배송비도 4000원에 이르는 시장 상황에서 택배가격은 산업시장의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택배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이렇게 묵묵히 견뎌온 택배산업현장이 이제 임계점에 도달해 택배기업과 근로자 모두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택배물량은 약 20% 증가세를 넘어 그 어느 시기보다 뜨거운 호시절을 맞았지만, 지난 30여 년간 꾹 참으며 견뎌온 곪고 아픈 상처들은 여기저기서 근로자들의 사망과 자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활 물류시장에 단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될 택배산업이 지금까지 이어온 영속성을 갖기 위해선 그동안의 관행과 운영패턴을 탈피해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 구축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속적 재투자와 택배기업의 ‘결단’
초창기 택배사업은 신규 사업자에게 큰 재무적 부담 없이 가능해 다양한 중소 택배기업들까지 시장 진출에 나서게 했다. 이후 2000년대 택배 춘추전국시대를 맞으며 경쟁이 심화되자 대기업은 물론 중소규모 30여 개의 택배기업들까지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렇게 치열한 시장의 부침을 보낸 뒤 2020년, 신규 택배사업자로 시장에 진출하려면 적어도 5곳 이상의 시·도에 총 30개소의 택배 영업소를 갖추고, 화물분류시설 및 보관시설 3곳과 전국 택배화물 추적이 가능한 IT전산망 등을 보유해야 한다. 물론 단순 택배사업 허가를 위해 이 정도의 시설과 장비구비 비용은 큰 부담이 아니지만 최고의 택배 경쟁력을 갖추려면 상상 이상의 천문학적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CJ대한통운의 경기도 곤지암 택배허브 터미널 구축비용은 약 3800억 원 가량이 투자됐으며, 2022년 본격 운영을 앞둔 롯데글로벌로지스(이하, 롯데택배)의 진천 택배 메가허브터미널 역시 3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진 역시 1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터미널 확장 투자에 나섰다.

그렇다면 택배기업들은 지금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얼마의 투자를 이어 온 걸까. 일상에서 당연하게 제공되는 택배서비스는 사실 이처럼 기업들의 천문학적 투자가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지속된 덕분이다. 택배산업은 6만 여 명의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기타 후방 산업 관련 일자리까지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일선 근로자를 비롯해 소비자 모두는 이 같은 투자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한다.

수 조원의 지속적인 투자 통해 생활물류시장 필수 서비스로 등극
국내 택배업 원조기업인 ㈜한진은 최근 그룹 주체인 대한항공의 항공산업 불황에도 불구하고 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섰다. 이 같은 행보는 2000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각종 재정적 어려움에도 한진의 유상증자 결정은 여전히 치열한 경쟁을 이어온 택배부문에서의 재투자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란 평가이다.

한진의 이번 결정은 전자상거래 산업의 급성장과 급변하는 물류산업 환경에 따라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재원을 마련함과 동시에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조치로 보인다.

특히 한진은 2023년까지 택배시장 점유율 20%를 목표로 대전 메가 허브터미널 구축 및 주요 거점 지역의 서브 택배터미널 신·증축, 택배분류 자동화 설비 도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물류 인프라 확대 및 글로벌 이커머스 국제특송시장 공략을 위해 인천공항 GDC를 개장하는 등 약 4800억 원 상당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이다.

지난해 롯데그룹 물류부문을 전담하고 여타 유통물류산업 활황을 위해 사업을 본격화한 롯데택배 역시 기업 인수 합병에 따라 멈췄던 택배 인프라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롯데택배는 중부권 메가허브 터미널 구축을 위해 약 3000억 원의 투자를 통해 2022년 1월부터 본격운영에 나설 예정이다.

롯데택배가 인수 합병 이후 첫 투자에 나선 충북 진천 메가허브터미널은 증가된 택배물량에 대비하고 원가경쟁력 강화 및 배송 네트워크 체제 개선을 통한 수익성 제고 등이 목적이다.

시설운영이 본격화 되면 부지 4만 평, 건축 연면적 약 5만 평의 지상 3층 규모인 터미널에서 하루 150만 박스를 처리할 수 있게 되며 인공지능을 기반해 3분류, 5면 바코드 스캐너, Load balancing 등 DT장비 도입으로 첨단 자동화 터미널로 선보이게 된다.

더불어 롯데택배는 영남권 물류통합센터를 위한 예상 투자액만 약 1000억 원에 이른다. 롯데택배가 투자하고 있는 여주 의류통합센터 역시 약 1600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규모만 부지 5만2000평, 건축연면적 약 3만 평의 지상 3층 규모로 AGV1(Automatic Guide Vehicle), Pocket Sorter2 및 Put to wall3 등 피킹, 분배 자동화 설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 같은 투자규모는 오랜 기간 이미 투자된 금액과 비교해 빙산의 일각이다.

이처럼 국내 택배시장의 2, 3위 택배기업이 최근 투자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재정 규모만도 1조 원이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국내 1위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의 택배관련 투자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당장 CJ대한통운은 택배업 최초로 서브터미널 분류설비 완전자동화(전국 SUB터미널 170여 개소 휠소터 설치)에만 14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CJ대한통운의 휠소터 투자결정은 온전히 배송기사들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분류작업의 노동 강도를 낮출 목적으로 도입됐다.

이렇게 CJ대한통운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170여 개 SUB 터미널에 자동화 설비를 완료하고 국내 최고의 택배화물 자동화 시설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분류작업 효율성은 약 2~4배 높아졌으며 근로자들의 편의성·안전성도 향상됐다. 기존 분류작업 방식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 여타 경쟁사들의 변화까지 가져왔다. 일선 배송근로자들 대부분은 기존 ‘1일 1배송’이 아닌 ‘1일 다회전 배송’ 방식으로 효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수입 증가와 작업시간 단축으로 워라벨 개선 등의 효과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편 CJ대한통운은 택배물량 규모화를 이루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메가허브 터미널에 4000억 원을 투입했다. 이 터미널은 축구장 면적 40배 크기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로 1일 처리 물량만 170만 상자에 이른다. 이밖에 소형 택배상품 분류 전담 자동화시설(전국 77개소 멀티포인트·MP) 역시 2021년까지 1600억 원을 투입해 총 77곳에 설치할 예정이다.

중견 이형화물 택배기업들의 투자도 대기업 택배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신택배와 경동 합동택배의 경우 터미널 구축에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투자됐으며, 수도권 도심 내 영업소 부지 1곳 확보에도 100억 원에 가까운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져 왔다.

수많은 일자리 창출과 160조원 규모 온라인 유통시장 지탱해
이처럼 천문학적인 투자를 이어온 택배산업 플레이어들은 지난 30여 년간 지속적인 업의 존속을 위해 고객만을 바라보며 기업을 일궈왔다. 이들 택배기업들이 창출한 일자리만 6만 여 개에 이르며, 여기에 4인 식구를 합산하면 현재 택배기업들의 투자만으로 24만 여명의 가계가 코로나19 정국에 산업시장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럼 이와 같은 대규모 금액의 산업시설 투자가 일자리만 창출했을까. 아니다. 당장 지난해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규모만 해도 134조 원에 달하며, 올해는 지난해와 비교해 2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약 16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거대 대한민국 전자상거래 유통시장은 택배서비스 없인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시장이다. 고작 7조 원 가량의 매출 시장인 택배서비스 산업이 160조 원의 거대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이밖에도 택배기업들의 지난 30여 년 동안 지속해온 투자 없이는 매년 급성장하는 미래 유통업의 꽃인 이커머스 산업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이은 근로자들의 사망사고로 비난의 화살을 맞는 국내 택배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딱 1주일만 배송을 멈추고 싶다”며 “아마도 1주일은 고사하고 2~3일만 배송을 멈춰도 대한민국 160조 원의 온라인 유통시장은 일순간 대혼란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온몸과 정신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 택배일선 관계자들의 진심이다.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배송근로자들 뿐 아니라 수 천 억원, 수 조원의 대규모 투자와 이에 따른 투자 위험을 감수하고 전쟁터 같은 택배산업계 주역으로 자리한 택배기업들 역시 이번 사고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택배기업들은 말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소비자와 함께 큰 산업으로 성장한 온라인 유통시장의 파트너로서 한순간의 서비스 멈춤 없이 꾸준히 이어온 투자와 노력을 쏟아낸 택배기업들의 고충을 지금부터라도 경청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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