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김기덕, 영화계 시선은 싸늘했다

입력 2020-12-1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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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이 11일(현지시간) 라트비아의 한 대학병원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하지만 영화계 공식 추모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라트비아 체류중 합병증으로 세상 떠나

칸·베를린 영화제 등 수상 불구
대다수 영화계 단체들 추모 자제
미투 논란 등 비판적 목소리 많아
영화 ‘섬’ ‘빈집’ 등으로 잘 알려진 김기덕 감독(60)이 11일(현지시간)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합병증으로 숨진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영화계 시선이 싸늘하다. 일부 추모 움직임이 없지 않지만, 대다수 영화관계자들이 침묵하는 사이 그의 생전 여배우 폭행 논란과 관련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이들의 목소리가 작지 않게 나온다.

“환갑일 한 주 앞두고…”
김기덕 감독의 사망 소식이 국내에 전해진 건 11일 오후였다. 현지 인터넷 언론 델피가 관련 보도를 내놨다. 이어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SNS를 통해 “키르기스스탄의 평론가로부터 라트비아로 이주해 활동하던 김기덕 감독이 환갑일 12월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고 전했다. 현지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 감독은 2017년 여배우 폭행 논란으로 소송을 이어가다 그해 말 해외로 출국했다.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등을 거쳐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한 뒤 현지 영주권을 얻기 위해 북부 휴양지 유르말라에 집을 구했지만 5일부터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로 출국할 수 없는 유족으로부터 장례절차를 위임받은 것으로 알려진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이 김 감독의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을 국내 송환해 유족에게 인계할 것으로 보인다.

베니스 황금사자상 등 성과 속 논란
1960년 경북 봉화 태생인 김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대신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농업학교에 진학했다. 15살 때부터 서울 구로공단 등에서 일한 그는 해병대 하사관으로 복무한 뒤 30살에 프랑스 유학을 떠나 영화를 공부했다. 1995년 ‘무단횡단’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전 대상을 받고 1996년 ‘악어’로 연출 데뷔했다.

이후 ‘섬’ ‘나쁜남자’ 등을 연출한 그는 200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감독상·사마리아)과 같은 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빈집), 2011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아리랑)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피에타’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첫 한국인이 됐다. 하지만 일련의 작품과 관련해 폭력적·반여성적 성적 도구화 등 논란을 모으기도 했다.

충격 분위기 속 싸늘한 시선

영화계는 김기덕 감독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부 관계자들은 SNS를 통해 추모의 언급을 내놨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썼다.

하지만 여배우 폭행 논란과 의혹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시각도 잇따른다. 김 감독은 2017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당시 여배우 폭행 혐의로 피소돼 벌금형에 약식기소됐다. 이후 2018년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돼 관련 소송을 벌여왔다.

12일 한 영화관계자는 SNS를 통해 “자연인 그의 명복을 빈다”면서도 “영화가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지만 예술 이전에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의 영어번역가인 달시 파켓도 “만약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를 기리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고 썼다.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영화계 단체들도 김 감독에 대한 공식적인 추모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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