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는 후배 변요한에게 촬영 전 “술 한 잔 하며 선배가 아닌 ‘형’이라 부르라고 했다”며 “똑같은 입장에서 다가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설경구는 후배 변요한에게 촬영 전 “술 한 잔 하며 선배가 아닌 ‘형’이라 부르라고 했다”며 “똑같은 입장에서 다가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 역할 맡은 설경구

내게 사극의 길 열어준 이준익 감독은 영화계 스승
이정은이 직접 손질한 홍어회, 입에서 살살 녹더라
“거부감이었을까.”

낯선 이에게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일에 대해서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얼마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상황과 일을 마주하고서야 다가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낯선 세상에 대해 호기심 많은 영화 속 캐릭터와 극명하게 다른 모습일까.

낯섦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이는 배우 설경구(53)이며, 그의 새로운 영화 속 캐릭터는 25일 개봉한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제작 씨네월드)의 정약전이다. 영화는 조선 순조의 시대(1801년), 남도의 섬 흑산으로 유배를 떠난 정약전이 바다생물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청년 어부 창대를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 학자의 호기심 가득한 정약전은 낯선 유배의 땅에서 창대에게서 배우고, 그를 가르친다. 최초의 어류학서 ‘자산어보’의 탄생 과정이기도 한데,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촬영현장에서 정약전의 설경구와 창대의 변요한은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낯을 많이 가린다고 하더라. 눈도 못 맞춘다. 성격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함께 작업을 해야 친해지는 편인데, 그가 그랬다.”


- 2016년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임시완과 ‘브로맨스’ 호흡을 맞췄다. 이번에는 변요한이다.

“(후배들에게)감사하다. 사실 내 ‘연식’이 있어 (후배들이)어려워한다. 변요한도 조금. 촬영 전 술 한잔하면서 선배가 아닌 형이라 부르라 한다. 사실 선배라고 후배들에게 모두 귀감이 되지는 않는다. 똑같은 입장에서 다가가려고 하면 그쪽에서도 다가오고, 그 선에서 만나는 것 같다.”


-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성장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영화계 스승은 누구일까.

“문득 생각나는 분들, 이창동·강우석·변성현 그리고 이준익 감독이다. 이창동·강우석 감독은 지금도 꾸준히 만나는 분들이다. 변성현(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감독은 나보다 어리지만 스승이다. 그동안 힘으로 밀어붙였다면 그것과는 다른 방식의 연기를 제시해줬다. 내가 협박도 한다. ‘나랑 계속해야 해’. 이준익 감독은 사극의 길을 열어줬다.”

영화 ‘자산어보’ 속 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속 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사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연 기회가 있었지만 용기가 안 났거나 조금 미루고 싶었다. 그럴수록 ‘해야 하는데’ 생각해왔다. (사극 속)모습에 자신이 없었던 듯도 하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을까. 출연 제안을 받고 ‘(고사한 뒤)꼭 할 걸’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극이 매력적으로 와 닿아왔던 것도 아닌 것 같다. ‘자산어보’로 달라졌다. 이번에 흑백 사극영화를 했으니 다음에는 컬러로 다시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여전히 낯섦에 조심스러워 하지만, 설경구는 “궁금증과 걱정” 사이에서 “기대와 설렘”으로 새로운 매일을 맞는다고 말했다. 촬영현장의 주역으로서 마땅한 처사일 수 있겠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펼쳐낸 이야기와 캐릭터가 남기는 여운은 깊다.


- ‘자산어보’를 비롯해 개봉 대기 중이거나 현재 촬영 중인 작품 등 올해 5∼6편을 포함해 최근 몇 년 사이 쉼 없이 달려왔다.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나.


“매일의 새로운 경험? 오늘 촬영 장면을 내일 다시 찍지 않고 대사도 똑같지 않다. 궁금증과 걱정과 기대와 설렘이 날 팔딱팔딱 뛰게 한다. 현장에선 늘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 땀을 쫙 뺀다. 새로움을 맞이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이다. 일을 반복하면서도 지겹지 않은 건, 움직이는 동선과, 대사와, 만나야 하는 배역에 대한 걱정과 궁금함, 설렘과 기대 때문이다.”

배우 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 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아침에 줄넘기를 1000번 한다는데. 언제부터인가.

“매일 두 시간 정도 한다. 이제 습관이 됐다. 2002년 ‘공공의 적’ 이후 ‘오아시스’를 준비하며 두 달가량 시간이 있을 때부터다. 몸무게가 90kg까지 불어났다. ‘오아시스’ 시나리오에 ‘앙상한 갈비뼈’라는 표현이 있어 억지로 살을 뺐다. 지방 숙소에는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모텔 방에서 했다. 심지어 해외 영화제에서는 호텔 화장실에도 했다. 최고의 실내운동이다.”

설경구는 오히려 그렇게 역동적인 일상을 살고 있었다. ‘자산어보’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도 그런 일상의 뒷받침 덕분일 터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면모로 관객 앞에 나서야 하는 건 배우의 숙명. 이를 받아 안으면서 그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 멜로영화는 어떤가.

“모든 배우의 로망 아닌가. 장르영화가 잘 되면서 다들 우르르 그리로만 가고 있다. 변요한의 말처럼 뼈와 살과 배를 쪼개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상업영화의 전체인 양 보이지만, 원래 영화는 멜로이지 않나. 나도 하고 싶다. 그런데 책(시나리오)도, 연락도 없다. 하하!”


- 그나저나 ‘자산어보’ 속 해산물이 맛나 보이더라.

“홍어회(생물), 문어, 전복탕…. 연기가 아니고 진짜 맛있더라. 녹더라. 갓 잡은 홍어를 그 자리에서 회로 먹은 건 처음이었다. 이정은이 직접 손질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