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보릿고개에 태어났던 V리그의 상전벽해

입력 2021-04-27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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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23일 2020~2021시즌 V리그 결산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출범 17번째 시즌의 V리그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다양한 지표를 곁들여 알렸다. 이에 따르면 2020~2021시즌은 남자부 134경기, 여자부 96경기의 평균 시청률이 1.01%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6라운드 도중 시즌이 중단됐던 2019~2020시즌 192경기의 평균 시청률 0.92%에서 0.09%가 늘어난 수치다.



특히 여자배구의 인기 상승세가 도드라졌다. 1.05%에서 무려 0.24%가 늘어난 1.29%였다. V리그 역대 남녀부를 합쳐 최고의 시청률 기록이었다. 흥국생명과 GS칼텍스가 맞붙은 챔피언결정전 3차전은 순간 시청률이 무려 4.72%로 역대 최고의 순간 시청률을 자랑했다. 이 같은 인기상승으로 V리그는 지금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생존이 막막했던 가운데 V리그 출범을 앞두고 애를 썼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놀라운 변화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V리그가 출범하던 2005년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막 걸음마를 떼려고 했지만 상황이 좋지 못했다. 당시 어느 언론은 불투명한 출범 상황을 빗대 ‘보릿고개에 태어난 아이’라고 표현했다. 김혁규 초대 KOVO 총재가 40여개의 상장기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V리그 참가를 호소했지만 반응은 한결같았다. “배구의 인기가 없고 우리 기업이 참여하기에는 규모가 작아 보인다”고 했다. 이 가운데 KT는 V리그 참가를 거절하면서 총재에게 달랑 기념품 하나를 줬다고 참석했던 관계자는 기억했다. 유일한 희망은 KGC인삼공사(당시 KT&G)였다. 다양한 경로를 거쳐 접촉했고 남자배구단을 창단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막판에 틀어졌다. 이미 창단 감독까지 내정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약속을 저버린 KT&G는 미안했던지 V리그에 처음 2년간 타이틀스폰서를 맡아줬다. 빈 집에 소가 들어오듯 그 돈은 KOVO의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됐다. 출범 당시 구단들은 가입비를 내도록 했는데 이 돈을 내지 않거나 절반만 내고 리그에 참가한 팀도 있었다. 외상으로 리그가입을 받아들여줄 정도로 KOVO는 힘이 없었고 V리그의 미래는 어두웠다.

중계방송도 쉽지 않았다. 방송사 출신의 박세호 초대 사무총장이 방송사를 찾아다니며 V리그의 중계를 사정하다시피 했다. 당시 방송사들은 “인기도 없는 것을 왜 중계하느냐”고 했다. KOVO는 경기당 1000만원씩 중계료를 내겠다는 제안까지 했지만 방송사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V리그는 이제 황금 알을 낳는 최고의 스포츠 콘텐츠가 됐다. 방송사가 먼저 수십억원의 중계권료를 내겠다고 할 정도로 전세 역전이다. 그만큼 시즌 평균 시청률 1%가 상징하는 의미는 크다.


특히 한동안 남자배구의 오프닝 게임 정도로 취급받던 여자배구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제7구단 페퍼저축은행이 탄생했을 정도로 남자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V리그를 위해 일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노력의 결과지만 반대로 말해서 언제든지 다시 힘들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V리그 구성원들이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단어는 겸손과 끝없는 노력, 그리고 경기의 높은 가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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