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사라졌다, 작가가 되어 돌아왔다” Lucy의 ‘안녕, 결혼’ ①

입력 2021-06-09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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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뮤지컬 배우, 결혼 후 작가로 컴백
연애 일주일 만에 결심, 연애 3개월 만에 결혼 골인
직접 쓰고 그린 깜찍 발칙(?)한 결혼 스토리 브런치서 인기


작가 루시(Lucy)를 처음 보았던 것은 대학로의 어느 소극장 무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년도 더 지난 얘기이고, 그때는 작가가 아니라 배우였으며,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는 활달했고 잘 웃었으며 영리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렸지만 가끔은 쌀죽 속의 케첩 한 방울처럼 이질적이기도 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종종 “글을 쓴다”고 했다. 무엇보다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그는 충분히 ‘배우’였지만, 우리와는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로의 한 술자리 모임에서 대선배 배우로부터 “넌 절대 배우하지 마라”는 얘기를 듣고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던 그를 본 것도 같다. 배우가 얼마나 고되고 배고픈 직업인지 앞서 체감한 선배의 애정 어린 조언이었을 테지만, 그는 꿋꿋이 이후에도 몇몇 작품에 출연을 했고, 독특한 캐릭터 연기는 꽤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사라졌다.

몇 년 만에 나타난 그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아니 직업이 조금 더 있었다. 개인방송 크리에이터이기도 했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이름도 달라졌다. 작가 루시.

그동안 그는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 얘기를 쓰고 그려 책을 만들었다.



책의 제목은 ‘안녕, 결혼’이다. “안녕하세요, 결혼”인지 “안녕히 가세요, 결혼”인지 알 수 없는 제목인데 표지부터가 정겹고 웃음을 짓게 만든다.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촌스런 빨간 내복(?)을 입고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루시 작가를 이메일로 만났다. 누가 ‘작가님’ 아니랄까봐 고맙게도 참 풍성한 회신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질문은 짧고, 답은 길다. 루시 작가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 참 오랜 만이네요. 출간을 축하합니다. 브런치에 연재한 에피소드를 묶어 책으로 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이런 소재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을까요.

이제껏 살면서 ‘남녀차별’이라는 걸 크게 겪은 적이 없어요. 부모님도 남동생과 저를 늘 평등하게 키우셨죠.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으니까 ‘시가가 우선이다’,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다’라는 생각들을 강요받게 되더라고요.

결혼 후 맞은 첫 명절에 시가의 행사 때문에 친정에 가지 못하게 됐다거나 폐백 때 친정 부모님이 제일 마지막에 절을 받는다거나. 전통이라고 불리는 관습에서 항상 친정은 뒷전이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며느리가 ‘남의 집 귀한 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부모님에게 저는 남편의 ‘1+1 상품’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때는 며느리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혀 없으셨어요. 그때부터 이런 저런 불만들이 쌓였죠.

불만이 생기면 그 부분을 풀어야 하는 스타일이라 남편이랑 많이 싸웠던 것 같아요. 명절 때문에 이혼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제 입장에서는 이런 얘기들을 시부모님한테 직접 하기는 어려우니까 남편이 대신 본인의 의견처럼 시부모님을 설득해줬으면 해서 한 얘기였는데 남편이 나중에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럼 니가 얘기해. 나는 이 일이랑 상관없는 사람이잖아.”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그때가 딱 임신 7개월 때였어요.


- 그래서 쓰게 된 거군요.

‘안녕, 결혼’을 쓰게 된 것이 그 시기예요. 며느리로서 가장 ‘화’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고, 임신하고 일이 끊겨서 초조해하던 시기기도 했거든요.

결혼하면서 ‘네이트판’에나 쓸 법한 일을 많이 겪어서 이 일들을 글로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결혼할 때부터 있었는데, ‘일을 해야겠다’라는 의지와 ‘극으로 치달은 상황’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던 것 같아요.


- ‘안녕, 결혼’은 총 4권의 시리즈로 출간됐습니다.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계획했던 건가요.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는 있는데 이제까지 쓴 글들이 제가 얘기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제가 쓴 줄 모르는 글들이라 언젠가는 작가명에 제 이름이 쓰인 책을 꼭 내고 싶었거든요.

시즌 1을 끝내고, 출판사 여기저기에 투고를 해봤는데 받아주는 곳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얘기가 너무 길고, 세고, 비속어도 포함되어 있고 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조앤 롤링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독립 출판으로 내게 됐어요. 표지 디자인부터 내지까지 모두 제가 편집을 하느라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죠. 시즌 2까지 연재를 했었는데 그 분량이 A5 기준으로 18000페이지가 넘더라고요. 가격 때문에 1권으로 줄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서 3개월을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어요. 그런 절 보고 남편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뭘 고민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색깔을 버리지 마.”

거기서 무릎을 탁! 쳤죠.

에세이기는 하지만 시간순대로 정리된 글이라 1권으로 줄이려면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색깔을 모두 버려야 했거든요. 그래서 에피소드를 좀 줄였어요. 그리고 시즌 1과 시즌 2의 그림이 톤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시즌 2의 그림은 거의 다시 그렸죠. 그렇게 4권의 책이 나왔네요.

대량 인쇄를 할 수 있는 자본금이 있었다면 책값이 반으로 줄었겠지만 그럴 자본금이 없는지라 POD(주문을 하면 인쇄를 하는 제작 방식) 출판을 하게 되어서 책값이 비싸진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3년 간 매주 써온 글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책 속에는 어지간히 ‘쎈’ 이야기들도 담겨 있군요. 짓궂은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남편과 시댁의 반응은 어땠는지요(웃음).

남편은 이 글을 쓸 때부터 제일 열정적으로 응원해줬던 사람이에요. 남편은 늘 ‘너만의 콘텐츠를 만들라’고 얘기했거든요. 책을 실물로 받아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더라고요. 뿌듯하고 행복하대요. 요즘은 아내가 책을 썼다고 주변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있어요. 물론 카톡 프로필에는 ‘호랑이 같은 마누라’라고 적혀있긴 하지만요.

시부모님은 아직 모르세요. 모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비밀 유지 중입니다.

남편 형에게는 얼마 전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멋있다고 해주시더라고요. 그 안의 얘기들 때문에 분노하실 줄 알았는데 다 알고도 웃으면서 멋있다고 해줘서 사실 좀 많이 감동 받았어요.


- 집필하는 동안 남편은 뭘 했나요.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아이가 태어난 이후라 사실 ‘안녕, 결혼’은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이렇게 책으로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주말마다 글 쓰라고 아이를 봐주고, 주말에 글을 쓰지 못한 날이면 평일 저녁에도 저를 컴퓨터 앞에 앉혀 놓고, 본인이 아이를 케어했거든요. 그리고 남편은 ‘안녕, 결혼’의 편집자예요.

글을 처음 쓸 때부터 읽어 보고, 이런저런 코멘트들을 해주고, 방향성을 짚어줬거든요. 처음에는 무겁고, 시니컬한 글이었어요. 그 글을 읽은 남편이 “조금 가볍게 써봐. 얘기도 답답한데 좀 재미있게 써보는 건 어때?”라고 조언을 해준 덕에 지금의 ‘안녕, 결혼’이 됐죠. 남편이 해주는 코멘트가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늘 글을 올리기 전에 남편에게 보여주곤 했죠. 남편이 같은 대학교 영화 연출 전공이라 남편의 코멘트를 꽤나 믿거든요. 남편이라고 좋은 말만 해주지는 않아요. 남편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고, 조목조목 세심하게 코멘트를 하는 편이라 ‘이렇게 진행 되어야 한다’, ‘아니다’를 가지고 싸운 적도 많답니다. 서로 생각이 안 맞을 땐 치열하게 싸우거든요. 물론 그 싸움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아요. 둘 다 금세 풀리는 성격이라.

돌아보면 남편이 ‘최고의 조력자’인 것 같아요. 똥 멍청이 같을 때도 많지만 제게 제 남편은 최고의 남편이랍니다.


- 하하! 저도 찔리는 데가 있는데요? 이 책은 어떤 독자들이 읽기를 원하며 썼나요.

처음에는 ‘결혼을 앞뒀거나 현재 결혼 생활을 하고 계신 여성분들’을 타깃으로 썼어요. 아무래도 결혼에 대한 제 생각들을 얘기 하다보니 며느리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브런치에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을 보면 여성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가끔 남자분들이나 예비 시부모님이 댓글을 달아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는 댓글이나 ‘며느리를 맞으면 이런 말들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댓글을 보면서 타깃층을 조금 확장했어요.

결혼을 앞둔 분들, 결혼 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 예비 시부모님, 현재 시부모님이신 분들까지. 이렇게 보면 거의 20대부터 전 연령층이 되는 건가요.

‘사랑과 전쟁’처럼 제 글도 세월이 가도 전 연령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결론적으로 ‘결혼주의자’입니까, ‘비혼주의자’입니까.

저는 ‘결혼주의자’예요. 시간을 돌려서 과거로 돌아가도 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닌지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오래오래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저희 부부는 서로 맞추고 맞춰서 결국엔 그렇게 살아가고 있거든요. 귀여운 아들도 있고요.

연애한 지 일주일 만에 결혼을 결심했고, 연애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지만 혼자 살던 때보다 셋이 사니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제가 ‘결혼주의자’라고 해서 주변에도 결혼을 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결혼이 좋은 점도 많지만 서로 양보하고, 희생해야 될 것들이 더 많거든요.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죠.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결혼은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둘이 돼서 좋은 사람도 있지만 혼자가 더 편한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내가 맞춰줄 수 있고, 나에게 맞춰 줄 수 없는 상대라면 결혼은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결혼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고로 꼭 하고 싶으면 하는 게 맞지만 결혼을 할 만한 상대가 없고, 있더라도 안 하고 싶다면 안 해도 되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저는 중립이 되는 걸까요. 정말 결혼은 어려운 문제예요.



- 책 안에는 글과 함께 유쾌한 그림들이 가득합니다. 그림도 직접 그렸죠?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엄청 잘 그리는 건 아니고요. 20대 때는 낙서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고, 본격적으로 디지털 작업을 하기 시작한 건 30대 초반부터예요. 동생이 미술 전공생이라 동생이 안 쓰는 타블렛을 빌려서 그리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네요.

부모님 가게에 걸어놓을 그림이 필요해서 그림을 그린 게 시작이었죠. 그땐 어린 왕자 그림만 그렸는데 지금은 제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려요. 생각나는 캐릭터나 지금의 제 상황, 아들의 모습. 일상에서 늘 모티브를 얻죠.

‘안녕, 결혼’에 그림을 넣게 된 건 글에서 표현 되지 않는 부분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전공이 시나리오인지라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영상화를 많이 하는데 글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장면들은 그림으로 넣었어요. 손이 느려서 한 회당 그림 하나가 전부였지만요.


- 그림 속 캐릭터들의 표정이 굉장히 독특한데 말입니다.

‘안녕, 결혼’의 그림은 처음과는 많이 달라요. 그림도 그리다 보니까 점점 늘더라고요. 처음에는 뭔가 특징이 없는 그림이었거든요. 제 기준에서.

고민이 많았죠.
‘글도 답답한데 그림에서라도 재미를 줄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인물들의 표정을 조금 우습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웃긴 문구도 넣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옷이 문제더라고요. 매번 다른 옷을 입히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서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겠다 싶었는데 문득 공연 때 입었던 검정 쫄쫄이 옷이 생각났어요. 검정 쫄쫄이는 너무 어둡게 보일 수 있어서 좋아하는 핑크색 쫄쫄이 옷으로 그리고, 최대한 우스꽝스럽게 표정을 지은 그림들을 그리다보니 지금의 스타일이 됐네요.

아. 제가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 아니라서 모든 그림들은 사진을 찍어서 대고 그려요.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조르죠. 남편은 저를 ‘나르시즘의 최강자’, ‘핑크 덕후’라고 놀리는데 전 지금의 제 모습을 그리는 게 즐거워요. 제가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Lucy 작가와의 유쾌한 인터뷰는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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