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빛나는 순간’ 고두심 “신내림 받은 듯 연기, 나도 놀라”

입력 2021-06-2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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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①] ‘빛나는 순간’ 고두심 “신내림 받은 듯 연기, 나도 놀라”

배우 고두심(70)에게는 바다 공포증이 있다. ‘제주 사람이 바다 공포증이라니’ 싶겠지만 강원도 사람이라고 다 감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고두심은 중학교 시절 바다에서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난 후로는 바다를 멀리해왔다. 드라마 ‘인어공주’(2004)에서 바다 촬영에 도전해본 적도 있지만 결국 실패해 대역을 썼다. 그런 그가 ‘해녀’가 됐다.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노년의 제주 해녀 고진옥을 연기한 것. 고두심을 바다로 이끈 건 소준문 감독의 손편지였다.

“해녀들의 정신은 ‘제주의 혼’이거든요. 모든 것을 품고 희생하는 그 정신. ‘내가 해야겠다’ ‘내가 잘 표현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소준문 감독이 손편지에서 ‘제주 하면 고두심이고 고두심의 얼굴은 제주의 풍광’이라잖아요.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이 내 얼굴이라니. ‘내 몸이 부서져라 해야겠다’ 싶었어요. 해녀 이야기를 하면서 대역을 쓸 순 없잖아요.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두심은 코로나19로 인해 연습할 곳도 마땅치 않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수영 연습에 매진했다. 제주 해녀 삼촌(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제주식 호칭)들과 함께할 때는 특히 안도할 수 있었다고. 고두심은 “최고들이 모였으니 ‘물에 빠져도 나 하나 안 구해주겠나’ 싶었다. 자신 있게 하게 되더라. 파도가 세서 출렁거리는데도 겁도 안 나더라”며 “내가 한 번 더 하겠다고 하니까 감독님도 놀랐다. 지금도 제주 바다면 갈 수 있을 것 같다. 단, 제주 바다여야만 한다”고 털어놨다.

제주 사람이라 다행히 제주 방언은 어렵지 않았다고. 고두심은 “열아홉까지 제주도 있었고 원래 방언을 썼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제주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장면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어차피 자막으로 나가니까 쉽게 못 들어본 방언을 쓰고 싶었다. 관객들을 약 올리고 싶었다. 옛날 할머니들이 쓰던 방언을 많이 연구했다. 쓰는 것에 불편함은 없었고 ‘씀’으로써 힐링을 했다”며 “제주에서 촬영하면서 어릴 때 먹던 음식을 푸짐하게 먹어서 두달 동안 행복했다”고 전했다.


고두심은 인터뷰 내내 제주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드러냈다. 배낭여행을 즐길 수 있는 올레길, 다양한 사연을 지닌 동굴, 자연과 풍광을 소개하며 열혈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가슴 아픈 제주의 역사 4·3도 언급했다. ‘빛나는 순간’에서도 4·3의 아픔을 다룬 바.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이해관계와 무관한 주민들이 대규모 희생당한 사건이다. 희생자는 3만 명이상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도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빛나는 순간’은 고진옥의 가정사 고백에 4·3을 담았다. 롱테이크로 촬영한 이 장면은 대배우 고두심의 혼신의 연기가 그야말로 ‘빛나는’ 명장면. 특별한 장치 없이 화면을 채우는 고두심의 연기만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두심도 스스로 ‘해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주신 대사는 많지 않았는데 제가 막 이어서 했어요. 저절로 나오는 게 마치 신내림 받은 것 같았죠. 제가 해놓고도 깜짝 놀랐어요. ‘내가 해냈네’ 싶었죠. 그런 순간이 많지는 않은데 걸려들 때가 있어요. 그 희열 때문에 연기의 끈을 못 놓는 것 같아요. 50년을 연기해왔고 가장 오래 쉬어도 6개월 정도였지만 번아웃은 못 느꼈어요. 그만큼 일하는 게 즐거워요. 지난해에는 은관문화훈장까지 주셨으니 ‘진짜 완전히 꼼짝 마라’ 예요. 사랑 받아온 만큼 남은 시간도 쏟아내며, 비틀거리지 않고 나아가야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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