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 원호연 감독

입력 2021-10-2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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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연 감독. 사진제공|큰물고기미디어

“임 할머니와의 1년…내 어머니를 보았다”

“어르신들 공부방 찾아다니다 만난 임할머니
남편 떠나도 자식 앞에선 눈물 삼키는 모습
위대한 모정과 젊음의 의지…모든게 빛났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의 한 산골마을에서 홀로 살아가는 임선녀(68) 할머니의 쓰러질 듯한 낡은 집 인근에는 ‘민둥산’이 있다. 대규모 산불이 남긴 생채기이다. 2017년 5월 무려 475개의 축구장 면적에 해당하는 765ha의 땅을 할퀴고 간 화마는 임 할머니 동네의 야산마저 그냥 놔두지 않았다.

여전히 검게 그을린 나무 밑둥 사이사이로 흙먼지만 날리지만, 생명은 시나브로 피어난다. 한 송이 진달래로. 그 여린 분홍빛은 사람 세상으로 퍼져나갈 새로운 희망의 온기이다.

“어머니들, 그들의 에너지가 좋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자 원호연 감독은 임선녀 할머니의 1년여 평범한 일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그 온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20일 선보인 신작 다큐멘터리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제작 큰물고기미디어)이다.

원 감독은 개봉 이후 “뒤늦게 글을 공부하시는 어르신들에게 영화를 보여드리려 이곳저곳을 돌고 있다”며 단체관람의 공감을 쌓아가고 있다.

“너무 열심히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그들의 에너지가 너무 좋다.”

2018년 2월 만학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좇아 강원도로 향해 거의 모든 공부방을 찾아다녔다. “첩첩산중에서 살아가는 사연 많은”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1년 3개월여 만에 임 할머니를 만났다. 그러나 “내가 젊은 날 못 배워 나이 들어서라도 글을 배워야겠다”는, 여느 어르신의 의지가 할머니에겐 없었다. 그저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느낌”이 가슴에 강하게 스며들었다.

할머니는 몇 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가며 남긴 “내 죽으면 어찌 살아갈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책을 폈다. 산골 집에서 공부방인 읍내 복지회관까지 택시비 2만8000원을 들여 일주일에 사나흘 길을 오갔다. 그리고 새롭게 살아갈 집을 짓기로도 했다.

“사람 이야기, 나를 되돌아보다”
그런 할머니의 일상을 원 감독은 날 것 그대로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1년을 보냈다”. 그 시간은 오롯하게 희망과 새로운 꿈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눈송이만이 컴컴한 겨울밤의 세상을 희미하게 밝혀주는 첫 장면에서 시작해 마침내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이 쨍쨍한 햇볕에 녹아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끝을 맺는 사이 할머니도, 원 감독도 새로운 꿈을 꿨다.

임 할머니는 문해 과정을 이수했고, 새로운 집도 완성했다. 원 감독은 “다른 이들의 것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되돌아봤다”고 말했다. 감독은 또 자식들이 걱정할까, 남편과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순간에도 울지 못했던 할머니에게서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에게서 “노령의 젊음”을 보기도 했다. “여전히 뭔가 해볼 수 있는 나이, 하지만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젊음의 의지”였다.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의지”는 “카메라 앵글에 담기는 장면과 장면들의 재미”를 깨달아가는 원 감독의 것이기도 하다. 2012년 ‘강선장’으로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의지이다.

“한 사람의 평범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로 관객이 꿈을 꾸고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의 연출자로서 품은 작은 소명인 듯하다. 또 한 편의 장기 프로젝트를 완성하려 막바지 작업실로 다시 향하는 감독의 뒷모습이 바빠 보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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