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레전드의 뒤늦은 은퇴식 [스토리사커]

입력 2021-11-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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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형 은퇴식 장면.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 스틸러스 주장 오범석(37)이 24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신의 은퇴 소식을 직접 알렸다. 2003년 포항에서 프로 데뷔한 뒤 K리그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무대에서 19년간 활동해온 그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는다고 밝혔다.

발표문은 깔끔했다. 마음의 정리를 참 잘했다는 느낌을 준 짧은 문장들이었다. “마음만 20대지 현실은 38살인 걸 또 잊고 있었다.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며 쿨하게 퇴장을 알렸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고마움도 전했다. 그러면서 “12월4일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뵙겠다”며 끝을 맺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은퇴하는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오범석 정도의 중량감 있는 선수라면 예전엔 구단의 보도자료가 기본이었다. 그 자료에는 각종 활동내역과 사진 등이 두툼하게 첨부됐다. 그런데 요즘엔 그 과정들이 많이 생략됐다. 굳이 구단을 통하지 않아도 다양하게 팬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와 관련해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뒤늦은 은퇴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된 은퇴식이 최근 잇따라 열렸다.

이달 초 제주 유나이티드 조용형(38)이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했다. 지난해 예정됐던 행사였지만 코로나19 때문에 1년 만에 팬들 앞에 섰다.

그는 제주 레전드다. 2005년 제주의 전신인 부천SK를 통해 프로에 데뷔한 뒤 제주 유니폼을 입고 176경기에 출전했다. 제주 연고 이후 최고 성적인 2010년 준우승과 2017년 준우승 때 핵심 멤버였다. 은퇴식에선 선수시절 영상을 보며 추억을 떠올렸다. 팬들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용형은 “은퇴 후 시간이 지나 무덤덤해질 무렵 은퇴식 진행 소식에 다시 가슴이 뛰었다. 처음과 끝을 함께했던 제주에서 은퇴식 자리를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기종(왼쪽)과 안성남 은퇴식 장면.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달 말엔 경남FC 배기종(38)·안성남(37)의 은퇴식도 있었다. 이 또한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된 이벤트다. 둘은 2017년 경남이 4년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는 데 일조했고, 이듬해 1부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대전하나시티즌과 경기에 앞서 진행된 은퇴식에선 상대 팀 감독의 축하를 받는 등 시종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5월엔 포항이 포항에서 100경기 이상 뛰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별도 행사 없이 은퇴했던 10명의 선수들을 초청해 ‘Re-Union Day : 2003 MEN OF STEEL2019’라는 이름의 합동 은퇴식을 가졌다. 이들 레전드들은 오랜만에 팬들과 뜻 깊은 시간을 갖고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어쩌면 코로나19를 핑계로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이벤트가 은퇴식이다. 하지만 K리그 구단들은 레전드의 헌신을 잊지 않고 감사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구단의 뿌리가 튼실해진다. 제주 구단 관계자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응어리가 사라진 느낌이다. 항상 고마웠던 선수였고, 미안했던 선수에게 늦었지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며 뒤늦은 은퇴식에 의미를 부여했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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