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비밀협약과 새 역사 만드는 현대건설 이다현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2-01-10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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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이다현. 스포츠동아DB

3년 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9~2020시즌 V리그 여자부 신인드래프트 때다. 오후 드래프트를 앞두고 KGC인삼공사와 도로공사는 비밀리에 협상했다. 그 해 신인드래프트에선 ‘제2의 김연경’이란 찬사를 듣던 정호영(선명여고)이 가장 큰 화제였다. 확률추첨제로 실시된 드래프트에서 인삼공사는 35%, 도로공사는 4%의 확률을 지니고 있었다.


두 팀은 전력보강을 위해 카드를 맞췄다. 레프트 보강에 애를 쓰던 인삼공사는 도로공사에서 비주전으로 머물던 하혜진을 탐냈다. 정대영, 배유나를 도와줄 센터를 찾던 도로공사는 이다현(중앙여고)을 원했다. 자연스레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드래프트 당일 오전 최종 합의된 협약서는 “인삼공사가 이다현을 지명할 경우 트레이드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인삼공사로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 정호영을 낙점하고, 다른 경우라면 플랜B를 택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비밀협약이었다. 1년 전 박은진을 지명했던 인삼공사는 베테랑 한송이도 있었기에 센터보다는 레프트 보강을 원했다. 당시만 해도 정호영은 센터가 아닌 레프트 유망주였다.

현대건설 이다현. 스포츠동아DB


하지만 이 합의는 실행되지 못했다. 구슬추첨기가 운명을 바꿔버렸다. 추첨기 관을 타고 가장 먼저 올라오던 구슬은 30%의 확률을 보유한 현대건설의 것이었는데, 밖으로 나오기 직전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본부장이 누르던 버튼을 놓아버렸다. 그 바람에 현대건설의 구슬은 아래로 내려갔고, 인삼공사의 구슬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결과로 인삼공사는 전체 1순위로 정호영을 지명했고, 이다현은 2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나중에 “1순위 구슬이 나왔어도 우리는 이다현을 지명하려고 했다”고 주장했지만, 본심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이다현은 프로 3년차에 현대건설의 주전 센터로 자리를 잡았고, 한국여자배구의 희망으로까지 떠올랐다. 8일 현대건설-도로공사의 2021~2022시즌 4라운드 맞대결에서 이다현은 3년 전 비밀협약을 추진했던 도로공사 프런트의 가슴을 여러 차례 후벼 팠다. 11득점의 이다현은 5개의 블로킹을 성공시켰고, 12개의 유효 블로킹으로 도로공사의 공격을 1차 저지했다. 그의 활약을 앞세운 현대건설은 도로공사의 13연승 도전을 저지했다.

양효진(왼쪽), 이다현. 사진출처 | 현대건설 배구단 SNS


경기를 거듭할수록 성장세가 눈에 띄는 이다현은 양효진과 함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속공 1위(86득점)와 4위(66득점), 블로킹 2위(60개)와 4위(56개)를 기록 중인 양효진-이다현의 트윈타워 덕분에 현대건설은 V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 시즌을 만들고 있다. 역대 최단기간 20승과 21연속경기 승점 획득을 달성했고, 역대 최다승점 돌파도 가시권에 있다. 현재의 승점제가 도입된 2011~2012시즌 이후 이 부문 기록은 2011~2012, 2014~2015시즌 남자부 삼성화재의 승점 84(29승7패)다. 10일 현재 승점 59의 현대건설은 15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지금의 기세라면 V리그 최초의 시즌 30승과 세 자릿수 승점 달성도 가능하다.


이다현을 놓치고 안타까워하던 도로공사는 결국 2년 뒤 FA 미계약 신분의 하혜진을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으로 보내고, 이다현의 중앙여고 2년 후배 이예담을 뽑아 센터를 보강했다. 인삼공사는 정호영을 센터로 돌리고 이소영을 FA로 영입해 레프트를 보강했다. 이 선택이 V리그 역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지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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