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 산업 거목’ BYC 창업주 한영대 전 회장 별세

입력 2022-01-17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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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내의 산업의 거목이자 산증인인 BYC 창업주 한영대 회장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한 회장은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든 한 회장은 광복 1주년이 되던 1946년 8월 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해 내의 산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광복 직후 국민들이 추위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지 않도록 메리야스 내의 생산 착수했다. 당시 국내 연간 내의 생산량은 52만매에 불과해 국민 37.6명당 내의가 1매 꼴로 보급되던 상황이었다.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탄생시켰다. 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기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의 생산을 위한 의지, 집념, 노력으로 편직기의 성능과 수를 증설했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6·25전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전쟁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운영자금으로 다량의 원사를 구입해 보관했으며, 전북 경제·상권의 중심지이자 도청 소재지였던 전주로 사업장을 이전했다.

이후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물 내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백양’ 상표를 출시했다. 아울러 대·중·소로 구별했던 속옷 사이즈를 4단계(85·90·95·100㎝)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그가 강조했던 원칙은 ‘속옷 외길’, ‘품질 제일주의’ 정신이었다. 76년간 한 눈 팔지 않고 달리며 내의 산업을 선도했다. 과거 미쓰비시 상사가 국내 시장에서 은밀히 샘플을 수거·검토 후 BYC 제품의 품질을 높이 사 일본으로 수출을 제안했지만 “아직 수출할 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BYC는 1975년 6월 상장했으며 1985년에는 독자 브랜드 개발을 통해 백양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길을 택했다. 해외시장에 진출한 BYC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상표를 넣은 로고와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장했다. 전성기에는 세계 78개국에 8000만 달러 규모의 메리야스를 수출했다. 이후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로 변경했다.

한편 한 회장은 1985년 경기 평택시 비전동 소재 평택동중학교와 평택동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을 한영학원으로 명의 변경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학교명도 신한중학교와 신한고등학교로 개명했다. 이사장 취임과 동시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재학생과 대학진학 학생에 대한 장학금으로 7억 원을 출연하고 학교 시설을 증설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VIP 2호실, 발인은 19일이다.

정정욱 기자 jja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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