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배구선수의 비극과 남은 사람들의 숙제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2-02-06 15:03: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6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의 경기 전 기자회견은 다른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 배구선수의 비보에 모두가 침울했다. 근조 리본을 달고 회견장에 들어선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은 “(김)인혁이 얘기는 경기 뒤에 하고 싶다. 우리는 경기를 해야 하니까.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보다 유가족이 더 힘들 것이다. 어린 나이에…. 마음이 힘들다”고 말했다.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던 고 감독은 “전 국민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우리 선수들도 내색하지 않고 잘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선수들에게 ‘경기는 경기답게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경기를 마치면 선수단 모두가 조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극에 빠진 원정팀을 대하는 OK금융그룹 석진욱 감독은 “같이 생활한 적이 없는 선수여서 뭐라고 말씀드리기도 어렵고 안타깝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이세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김인혁 선수의 어머니도 주부배구교실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등 배구에 애정이 많았다. 잘 아는 분인데 이런 일이 닥치다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OK금융그룹은 경기 개시 직전 고인을 추모하는 짧은 묵념 시간을 마련했다.

V리그는 2년 전에도 젊은 여자선수를 빨리 떠나보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에도 대중의 무분별한 비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젊은 선수가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27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고인은 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첫 번째 비극이 생겼을 때 V리그를 포함한 배구계가 나서서 감정노동자 신분의 어린 선수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했지만, 차일피일 미룬 것이 안타깝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구단들이 2차례의 비극적 사건을 교훈 삼아 빨리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비슷한 일이 또 생길 수 있다.

아쉽지만 배구의 인기가 커지면서 독버섯도 함께 자라고 있다. 배구 커뮤니티에는 선수들을 헐뜯는 것에 인생을 건 듯한 사람들도 많다. 이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V리그는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 이제는 선수 개인의 일상이 된 소셜미디어(SNS)에는 직접 비난의 글을 보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선수들에게 이를 무시하라고 강요할 게 아니다. 이들을 퇴출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건강한 상식을 가진 팬이 앞장서야 한다. 선수의 인권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보이면 누구라도 신고해서 KOVO가 즉시 응징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문제 상황은 끝낼 수 없다. 삼성화재는 4일 호소문에서 추측성, 비방성 글이 아니라 고인의 배구에 대한 열정에 좀더 관심을 가져주고 앞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좋은 방향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기자는 2019년 11월 8일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10개의 서브에이스를 기록한 뒤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했던 고인을 더 기억하려고 한다. 부디 비난과 악플이 없는 그곳에선 행복하게 배구하고 마음 편히 지내기를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안산|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