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생 소유진’의 ‘82년생 김지영’…관객은 동세대의 공감을 삼켰다 [공연리뷰]

입력 2022-09-19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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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남주의 원작소설, 정유미·공유가 주연을 맡은 영화와 확연히 다른 연극만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연극.

연극화하면서 눈에 띄는 점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는 모서리’들을 한줌씩 깎아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연극 ‘82년생 김지영’은 같은 말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표정의 이야기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 엄마, 딸로 살아가던 중 정신 이상증세가 나타난 김지영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동시대를 경험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아내, 엄마, 딸이라는 사회적 이름에 가려져 빠르게 희미해져가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 힘을 내어 나아가라고 등을 밀어주는 연극이다.

81년생 소유진은 ‘82년생 김지영’과 동세대의 공감을 관객들이 부담없이 삼킬 수 있도록 연기했다. 소유진의 밝고 명랑한 연기도 좋지만, 심연으로 끝없이 하강하는 프리다이버 같은 감정의 연기만큼은 그가 종종 출연하는 연극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혜와 같다.


소유진이 보여준 김지영은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자리에서 감동을 ‘줍줍’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다수의 작품들은 관객이 감동을 받는 공통의 지점이란 것이 있기 마련. 하지만 이 연극은 사람마다 각자의 포인트에서 돌연 울컥하게 만든다.

소유진의 김지영 또한 그러한데 개인적으로는 극한의 상황에서 폭주한 김지영이 빨랫감을 모두 집어던져버린 뒤 우는 아기와 함께 울음을 쏟아내다 아기를 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는 장면이 그랬다. 이런 무방비 상태에서의 울컥 포인트는 서너 군데 더 있었지만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므로 여기까지만.
‘김지영’은 소유진 외에 박란주와 임혜영이 맡고 있다.

아내의 변화를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남편 정대현 역의 김승대는 외모에서부터 ‘착함’이 줄줄 흘러넘쳐 미워할 수 없다. 세상이 아내의 어깨 위에 얹어버린 짐의 무게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그 역시 아내로 하여금 ‘희생 플라이’를 치게 만든 누상의 주자와 같다.


오미숙 외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 최정화의 연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대단한 기량을 앞세워 작품의 이음새를 단단하게 죄고 있다.

남녀의 이야기도,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사람. 그것도 참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과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 이미 본 사람, 연극을 보고 소설과 영화를 보게 될 사람 모두 동일한 재미와 감동을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스포트라이트·문화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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