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꽃길은 내가 깐다” 산에서 노래하는 메조소프라노, 장은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24]

입력 2023-05-22 0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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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사라진 코로나의 긴 터널, 슬럼프 이기려 찾은 산
솔직한 이야기, 모습에 팬들 열광 … 잊을 수 없는 독창회
독일 유학시절 소프라노에서 메조로 전향…“둘 다 가능합니다”
즐거웠던 뮤지컬 무대 경험, “기회 온다면 뮤지컬도 하고파”
“이 사람은 왜 산을 오르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본업은 성악가인데, 인스타그램을 보면 노래하는 사진보다 산을 오르거나 달리는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스포츠동아에는 ‘셀럽들의 7330’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셀럽들이 평소 좋아하는 운동이나 스포츠를 소개하는 코너인데요, ‘7330’은 ‘일주일에 세 번 30분 이상 운동하기’를 의미합니다. 십수 년 간 대한체육회에서 밀고 있는 대국민 생활체육 & 건강 캠페인이죠.

사실 ‘일일공 프로젝트(일주일에 한 번은 공연을 보자)’도 이 7330에서 살짝 따왔음을 고백합니다.

장은씨와의 인터뷰 섭외는 원래 ‘셀럽들의 7330’을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하다보니 운동 말고도 ‘너무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운동 얘기만 쓰자니 ‘너무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하는 인터뷰, ‘일일공 프로젝트로도 모시자’ 싶어졌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러니까 ‘셀럽들의 7330’의 오리지널 풀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이제 ‘산에서 노래하는 메조 소프라노’ 장은씨의 그 ‘너무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잔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4월 25일 충정로 스포츠동아 인터뷰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 메조소프라노시죠. ‘성악을 전공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건 언제쯤이셨나요.

“중학교 때죠. 조수미, 신영옥 선생님 같은 분들이 TV에 많이 나오시던 때였거든요. 노래가 하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죠.”


- 조수미씨의 영향이 컸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성악하는 여성들은 아름다운 외모하고는 거리가 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조수미 선생님을 보니까 너무 예쁘시고, 꾀꼬리처럼 노래를 하시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엄마, 저거 뭐야. 나 저거 하고 싶어’하고 졸랐죠.”


- 어머니께서 순순히 허락을 하셨던가요.


“일단 딸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셔야 하니까. 저희 집에는 음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성악을 하신 분 앞에서 오디션을 봤어요. 그랬더니 ‘재능이 있다’, ‘목소리가 좋다’고 해주셔서 ….”


- 전문가답게 첫 눈에 알아봤네요(웃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악을 시작했죠. 예고가 아니라 인문계 고등학교였어요. 열심히 했죠.”



-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었다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성악은 아무래도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변성기가 있잖아요. 몸이 악기이다 보니 어느 정도 신체 발육이 된 상태에서 시작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여성에게도 변성기가 있군요.

“그럼요. 미세하게 차이가 있어요. 당시엔 ‘예고를 가지 않아도 난 잘 할 수 있다’ 뭐 이런 자신감? 이런 게 좀 있었죠.”


- 메조소프라노신데 말씀하시는 톤은 소프라노의 느낌인데요.

“하하, 사실 저는 원래 연세대 음대 시절에는 소프라노였어요. 그러다 독일에 유학을 가서 전향을 한 거죠. 교수님께서 ‘은아, 너는 소프라노도 할 수 있고 메조소프라노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결정해’ 하셨어요. 그러시면서 슬쩍 ‘근데 열 명 중에 아홉 명이 소프라노고, 한 명이 메조소프라노야’ 하시더라고요.”


- 그게 무슨 의미셨을까요.

“메조소프라노 쪽을 미시는 거죠(웃음). ‘넌 키도 크고 멋있잖아. 나 같으면 메조소프라노 하겠어’ 하셨어요. 처음엔 싫었어요.”


- 메조소프라노는 오페라에서도 주인공 역할이 소프라노에 비해 제한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전 얼마든지 소프라노로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는데 레슨을 받으러 가곡 악보를 가져가면 소프라노 악보를 싹 빼시는 거 있죠. 슈베르트 ‘송어’를 가져간 날엔 메조소프라노 악보를 딱 반주자에게 주시더라고요.”


- 교수님께서 작전을 쓰셨네요.

“레슨시간에 노래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뭔가 답답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낮은 키를 주신 거였죠. 여하튼 그렇게 교수님이랑 한 학기를 신경전을 벌이며 싸웠죠. 그런데 또 그냥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가 갖고 있는 아랫소리라든지 이런 것도 좋더라고요. 그래서 메조소프라노로 전향을 하게 됐습니다.


- 교수님께서 메조소프라노셨던 모양이죠?


“아뇨. 교수님은 테너셨어요 ….”


- 오페라는 배역이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무대에서는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두 개를 다 하시겠는데요.

“다 할 수 있죠. 사실 메조소프라노들이 고음이 안 나와서 메조소프라노인 것은 아니에요.”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저만해도 고음이 다 나거든요. 오히려 표현의 폭이 넓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어떻게 보면 좀 하이 메조라고 할 수 있어요. 조금 높은 메조. 독일에서는 호젠롤레라고 해서 바지 입은 여자의 역할이 많아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케루비노도 지금은 다 메조소프라노들이 해요. ‘헨젤과 그레텔’의 헨젤도 그렇고. 여하튼 전 다 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다 불러드립니다!(웃음)”


-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두 영역을 오가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그만큼 표현의 폭이 넓다는 거겠죠. 뮤지컬배우 중에서는 신영숙 배우가 성악을 전공했는데요. 전 그 분이 메조소프라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소프라노시더라고요. 그나저나 역시 최애 배역은 ‘카르멘’이시겠죠?“

“그렇죠. 카르멘은 제 음악 인생에 날개를 달아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잘 하고 싶고요.”


- 오페라 얘기가 나와서 좀 더 하자면, 아쉬울 때가 많아요. 뮤지컬과 달리 오페라는 길어야 딱 3일 정도 공연을 하지 않습니까. 연습할 거 다 하고, 무대도 다 만들어놨는데 3일만 하고 내려야 하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페라를 종합예술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힘들죠. 진짜 참 안타까워요. 저희도 오페라 전용극장 같은 곳에서 길게 공연하고 싶어요. 그런데 오페라는 그야말로 정말 소수의 팬들만 계시고, 그 팬 분들도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아서. 우리 음악인들끼리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그러고 보니 장은씨도 뮤지컬 작품에 출연하신 적이 있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신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마지막 편지’라는 뮤지컬이었어요. 김대건 신부님은 박완씨가 하셨고, 저는 신부님의 어머니 고우슬라 역이었죠. 이 작품의 음악을 작곡하신 교수님께서 같이 해보자고 해주셔서 감사하게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 한번 해보니까 어떠시던가요. 뮤지컬을 앞으로도 계속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시던가요.

“너무 좋더라고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한 마음이 되어서 작품을 한다는 게 좋았어요.”


- 단체 활동이 적성이 맞으시나 봅니다.

“제가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좋은 기회가 온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무대가 있다면.

“재작년에 독창회를 했거든요. 일요일 저녁 일곱시 반이면 오시기에도 쉽지 않은 시간인데, 정말 홀을 가득 채워주셨어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좌석도 한 자리 건너, ‘퐁당퐁당’이었는데. 평소 제 활동을 지켜봐 주셨던 분들께서 ‘꼭 응원하고 싶다’며 와주셨죠.”



- 팬분들이 아주 열성적이시네요.

“그런가요 흐흐. 연주회가 끝나면 대개 로비에 나가서 관객 분들과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데 이날은 (코로나 시기라) 공연장과 로비의 조명을 바로 꺼버리더라고요. 철저했어요.”


- 그땐 그랬습니다. 연주자도 팬들도 많이 아쉬웠죠.

“그래서 무대에서 마지막 앙코르곡을 부르기 전에 말씀을 드렸어요. 아쉽게도 로비에서 뵐 수가 없다 …”


- 미리 인사를 드리셨군요.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만납시다!”


- 푸하하! 그래서 주차장에서 만난 건가요.

“주차장에서 리셉션을 한 거죠. 거기서 사진도 찍고, 인사도 나누고. 정말 그분들이 다 오셨더라고요.”

(장은씨는 이날 앙코르곡으로 ‘희망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곡은 1921년에 발표돼 1930년대,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에 크게 유행한 대중가요의 고전 중의 고전이죠.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라는 가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제가 힘들었을 때 제게 가장 힘이 되었던 노래거든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뭔가를 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제 모습을 알아봐 주시고,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또 이렇게 독창회에 많이 와주신 분들께 제가 보답을 드리고 싶었어요. 전 이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예술가로써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도 이런 순간이겠군요.

“그렇죠. 정말 단순해요. 그냥 ‘은아, 네 노래가 내 마음에 왔어’ 이렇게 말씀해주실 때죠.”

(장은씨는 최근 갤러리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인사동의 어느 갤러리 오프닝 무대였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자신이 받은 느낌을 바탕으로 세 곡을 불렀습니다. 마지막 곡이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였는데, 작가가 장은씨에게 다가왔습니다)

“눈물이 나셨대요. 너무 와 닿았다고. 사실 그냥 말 한마디잖아요. 그런데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 정말 좋거든요. 결국은 이런 것으로 제가 사는 것 같아요. 제게는 또 하나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예술가로서 더 탄탄한 무언가를 만드는 작용을 하니까.”


- 저는 예술가들이 가장 밝은 얼굴을 할 때를 몇 번 본 일이 있습니다.

“어떤 때였는데요?”


- 공연장에서 연주를 마치면 퇴장을 위해 무대 사이드의 문이 열리잖아요. 그 문을 들어서는 순간 정말 행복한 표정들을 지으시더라고요. 물론 관객들은 볼 수 없지만.

“하하하! 맞아요. ‘이제 진짜 끝났다’ 하는 성악가들도 있고, 막 뛰어다니기도 하고. 구두 벗어 던지고(웃음).”



-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본의 아니게 목을 아끼지 않았습니까. 혹시 코로나 이후 소리라든지, 기량이라든지 달라진 점이 있나요.

“바뀌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퇴화되었다고 느꼈어요. 코로나 전에는 늘 공연과 무대가 있었고, 목을 계속 써야했는데 이게 트레이닝이기도 하거든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 드레스를 늘 입어야 하니 관리도 해야 하고. 그런데 2~3년 동안 드레스 입을 일이 별로 없으니 자연스럽게 살도 찌고, 목도 마찬가지였죠.”


- 확실히 그런 문제가 있었겠네요.

“노래가 예전처럼 안 되는 것을 초반에 느꼈기 때문에 계속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오히려 나아졌어요. 산에 다니면서 호흡이 깊어지고, 지구력도 생기고. 성악은 그런 거거든요. 밸런스가 중요한데 결국은 잡아주는 힘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게 산에 다니면서 엄청 좋아진 거죠.”

서두에 언급했지만 장은씨는 요즘 무대 못지않게 ‘아웃도어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맞아 공연 스케줄이 줄줄이 취소되고, 설 수 있는 공연과 무대가 없어지면서 슬럼프에 빠졌던 장은씨는 마음도 다잡을 겸 산을 찾았습니다.

등산에 재미를 들리면서 장은씨는 자신의 모습과 산에서 느낀 감상을 솔직하게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호응하면서 ‘산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로 유명해졌죠. 다수의 언론매체에서 취재, 인터뷰를 요청해 오는가 하면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지자 유튜브에서 재기에 성공해 다시 방송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어느 유명 개그우먼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내 꽃길은 내가 깐다.”

사실 장은씨는 등산만 잘 하는 게 아닙니다. 달리기에도 상당한 실력자입니다. 풀코스는 아니지만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합니다. (5월 6일에도 여성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10km 코스를 뛰었다고 합니다). 요가에도 일가견이 있지요. 장은씨는 예체능을 겸비한 재원입니다.

그는 연세대 응원단의 치어리더 출신이기도 합니다. ‘음대생은 동아리활동 금지’라는 불문율을 깨고 응원단에 들어갔습니다. 응원단 선발 오디션장에서 “전방에 함성 발사” 요구에 소프라노 창법으로 시원하게 고음을 내질러 심사위원들을 뒤집어지게 만든 일화는 꽤 유명하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 팬데믹의 길고 험난한 터널을 지나며 자신의 꽃길을 당당히 깐 장은씨를 문득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아니, 저는 이미 응원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산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꼭 무대에서만 노래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피아노 반주가 없어도 새소리, 바람소리가 이렇게 내 노래에 화답을 해주고 있지 않나. 산에서 만난 바위들이 오히려 극장보다 더 좋은 소리를 울려주고 있지 않나. 예술의전당에서만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래는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나는 그렇게 할 거다 (북한산을 오르며, 장은)”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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