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수행기사, 7일간의 여정… 단 3일간 인사를 모신 거리 무사고 31만㎞ 지구 8바퀴

입력 2023-09-19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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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L이 주최하는 9·18 평화만국회의 제9주년 기념식이 18일부터 개최된 가운데, 지난 16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의전차량부 봉사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ㅣHWPL

국빈급 인사들 “수행기사가 본업이 아닌 봉사? 믿을 수 없어”
국내 ‘유일무이 차량 의전’… 해외인사의 입국에서 출국까지
도어맨부터 칸보이까지… ‘GPS 탑재 관제 시스템’ 철통 차량 의전
2023년 9월 중순,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마련된 임시 차고지에서는 의전 차량 점검, 차량 관리를 위해 고급 세단과 SUV가 열을 맞춰 주차돼 있었다.

짙은 정장과 반듯하게 빗은 머리의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의전차량부 수행기사들은 평화를 위해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해외 인사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차량의 보닛을 열고 부족하거나 이상이 없는지 차량 점검을 시작했다.

의전차량부 수행기사 팀장의 구령에 맞춰 차량 점검을 하는 모습은 흡사 군대의 사열을 보는 듯한 절도 있는 모습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전광판에 HWPL 9·18 평화만국회의 9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해외 인사들의 탄 항공기의 도착을 알리는 사인이 들어올 때마다 의전 차량을 찾는 무전기 소리도 덩달아 늘어만 갔다.

“치익~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전 대통령, 3층 출국장 도착, VIP 1호차, 3층 8번 게이트까지 칸보이(Convoy·국빈급 인사의 호송대) 차량과 함께 35초 뒤 도착할 수 있도록 출발하세요. 이상”

국빈급 인사가 도착했다는 관제실 무전을 들은 칸보이팀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정성택 칸보이 수행 팀장은 함께 차량 의전을 수행할 팀원들과 무전을 통해 소통하며 지령받은 장소를 향해 일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의전차량부 관계실에서 지령이 떨어지자 경광등을 단 호위차량을 필두로 루마니아 국기와 HWPL기를 단 고급 대형 세단 3대와 대형 세단 1대, SUV 차량 2대가 대형을 갖춰 출발했다.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전 대통령이 공항 앞 도열한 국제청년평화그룹(IPYG) 청년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동하는 동안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전 대통령 내외를 태울 의전 차량과 칸보이 차량은 상황실의 지령한 시간에 오차 없이 차량을 8번 게이트 앞에 멈춰 섰다.

또 다른 인사가 공항에 도착한다는 무전을 받은 유준영 수행기사는 차량 거울을 통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안전밸트를 맸다. 그는 “우리는 단순히 차를 움직이는 수행기사이기 전에 한국에서 귀빈을 맞이하는 최일선에 있는 의전이다. 보이지 않는 양말까지도 확인하며 준비한다”며 잠겨 있던 차 기어를 풀고 출발했다.

입국 전부터 인사와 함께하는 통역 의전과의 소통을 끝으로 차량에 인사가 탑승하면 그때부터는 ‘평화수행기사’의 영역이다. 인사들의 출국까지 7일을 대기하고 봉사하는 고된 일정이지만 이들은 평화를 지키는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었다.

18일 오전 HWPL 9·18 평화 만국회의 9주년 기념식이 개최된 가운데 HWPL 의전교통부 관제실에서 양진숙 부장(맨 오른쪽)이 의전차량 관제와 관련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ㅣHWPL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전 대통령처럼 이번 행사에 참석해 국가원수급 의전 받은 해외 인사만 16일부터 17일까지 총 42명이며, 의전차량을 이용한 인사들만 총 1000여명에 달한다.

18일 현재까지 300대의 의전차량이 뛴 거리는 무사고로 총 31만㎞다. 의전차량 봉사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지구를 8바퀴 가까이 돈 셈이다.

향후 계획된 일정을 고려하고 해외 인사들의 출국 지원까지 포함하면 7일간 평화 수행기사들의 운전한 총거리는 지구의 20바퀴, 약 80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전 대통령 등 전·현직 국가원수급 인사와 장·차관 등 해외 인사들은 일제히 행사 기간 자신들의 발이 돼 준 수행기사들을 향해 찬사를 보내면서도 이들이 모두 자원봉사자라는 점을 알게 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해외 인사들은 “고도의 훈련이 된 이 엄청난 조직과 사람들이 수행기사가 본업이 아니고 다른 직업이 있는 봉사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공통적으로 보였다고 행사 관계자는 귀띔했다.

본 행사에 동원되는 수행기사만 300명. 관제실, 로비팀, 교통안내팀, 도어맨, 주차안내팀, 입출차 정보 관리팀, 사고처리 보험팀 인력까지 합하면 1000명 정도가 차량 의전을 위해 움직인다. 민간 평화단체로 움직인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이며 시스템이다.

인사가 정해진 차량에 탑승하면 관제실에선 자체 제작 어플을 통해 해당 차량에 연결된 GPS프로그램으로 인사가 도착할 장소, 이동 거리, 신호가 바뀌는 시간, 교통 현황 등을 큰 스크린 3대에 띄워놓고 중앙 컨트롤한다.

항공사 관제탑만큼 체계적인 관제실 모습에 놀라 언제부터 이런 시스템을 갖춘 것인지 물었다. 이유란 의전 차량부 부총괄은 “의전 차량은 9·18 평화 만국회의 첫 회부터 진행했고 6주년 행사부터 지금과 같은 교통관제 시스템이 운영됐다. 우리는 ‘평화단체’이자 민간단체다. 신호 통제 등을 할 수 없고 시민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기에 자체 개발했다”고 답했다.

차량 의전부 총괄 관계자는 수행기사의 컨디션이 곧 인사의 안전에 직결되기에 의전을 하기 전 항상 팀원들의 비타민을 챙기고 건강 상태를 점검한다. 또 차량의 고장은 발생하면 안 되기에 행사 3일 전부터는 모든 차량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또 확인한다.

의전차량부 관제실 사령관 양진숙 부장은 “인사들이 이동하며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어떻게 빠르게 대처할 것인지만 생각하고 있다”면서 때를 놓쳐 다 식어버린 도시락을 열었다.

‘9·18 평화 만국회의 제9주년 기념행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수행기사들 앞에 ‘평화’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외교관의 마음으로 한국의 질서를 보여주고 안전을 책임진다’는 이들을 수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부산 | 김태현 기자 localbu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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