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일두고택 입구인 솟을대문.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정여창의 집이다. 정여창 가문이 나라에서 받은 정려(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려 표창한 것) 5개가 있다. 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초겨울 가볼 만한 여행지
집은 생각해보면 참 신비한 곳이다. 통상 물건은 사람의 손을 탈수록 빨리 낡고 상한다. 그런데 집은 반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도 급격히 쇠락하는 반면, 사람이 머물며 일상을 함께 한 곳은 100년, 200년의 세월이 흘러도 굳건하다. 그래서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살아온 옛집에는 저마다 지나온 세월의 유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침 한국관광공사가 초겨울을 맞아 선정한 ‘가볼 만한 곳’의 테마가 ‘이야기가 있는 고택’이다. ●근대사의 현장 ‘인천시민애(愛)집’
(인천 중구 신포로39번길) 인천시민애(愛)집은 인천항 인근, 자유공원 남쪽에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업가가 지어 살던 곳을 인천시가 매입해 한옥 형태 건축물을 올리고 시장 관사로 활용했다. 이후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쓰이다가, 2021년 7월 재정비를 마치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했다. 인천시민애집은 크게 세 공간으로 구성됐다. ‘1883모던하우스’는 과거 시장 관사를 개조한 근대식 한옥이다. 일본식 저택이 있을 때 모습을 간직한 ‘제물포정원’이 주변을 감싼다. 옛 경비동은 인천항과 개항로 주변을 조망하는 ‘역사전망대’로 내부는 전시관 역할을 한다.
●성리학 대가의 품위 ‘함양 일두고택’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함양 일두고택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일두 정여창의 집이다. 지금 남은 고택은 정여창이 세상을 뜨고 약 1세기가 지나 건축했다. 입구 솟을대문에 정여창 가문이 나라에서 받은 정려(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려 표창한 것) 5개가 있다. 사랑채에는 ‘문헌세가’(文獻世家) 편액이 걸려 있고 방문 위에는 ‘충효절의’(忠孝節義)라고 쓴 큰 종이가 있다. 누마루에서는 마당에 조성한 석가산이 보인다. 사랑채 옆으로 난 일각문을 지나면 여성의 공간인 안채로 연결되고, 곡간과 정여창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차례로 나온다.
●돋보이는 선조의 지혜 ‘논산 명재고택’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 대학자 명재 윤증의 집이다. 안채와 광채(곳간채), 사랑채, 사당으로 이루어졌다. 미닫이와 여닫이 기능을 합친 안고지기를 활용한 사랑채, 일조량과 바람의 이동을 고려한 안채와 광채 배치 등 선조의 지혜가 돋보인다. 안채 문 뒤에 내외 벽을 설치하고 벽 아래 틈을 둬 안채 대청에서 방문객의 신발을 보고 안주인이 대비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인공연못, 장독대, 고목 등이 운치를 더한다. 현재 후손이 살고 있어 지정된 장소 외 출입이 안 된다.
인근 연산역에서 기차문화체험관과 연산역 급수탑을 구경하고, 옛 곡물 창고가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연산문화창고를 함께 돌아보면 좋다.
논산 명재고택의 명물인 장독대. 명재고택은 보존 상태가 양호한 조선 양반 주택의 가치에 실용성과 과학적 원리가 돋보이는 한옥으로
꼽힌다(위 사진). 인천시민애집 ‘1883모던하우스’의 사랑채 쉼터. 일본인 사업가가 일제 강점기 때 지어 이후 시장 관사로
사용했던 근대식 한옥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250년 역사 품은 ‘구례 운조루’
(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을 가진 너그럽고 포근한 고택이다. 1776년(영조 52) 류이주가 낙안군수를 지낼 때 지은 집이다. 250년 가까이 잘 보존된 외관이 눈길을 끈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사당, 연지로 구성된 고택은 규모가 제법 크지만,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하다. 부드러운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랑채 누마루는 운조루의 백미다. 문인들이 풍류를 즐긴 곳이다.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오른 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은 숲과 저수지를 따라 3km 남짓의 길이 걷는 맛이 있다.
●다산의 자취 ‘남양주 여유당’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다산 정약용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에 그의 숨결이 서린 여유당이 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자, 정약용은 고향으로 내려와 사랑채에 여유당(與猶堂) 현판을 걸었다. 여유는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라’는 뜻이다. 다산은 18년의 강진 유배 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여유당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정리했다. 선생이 살던 생가는 1925년 대홍수로 떠내려가 1986년에 다시 세워졌다.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됐다. 여유당 뒤 언덕에 정약용선생묘, 언덕 아래 선생이 쓴 자찬묘지명이 있다. 여유당과 정약용선생묘가 자리한 정약용유적지를 위해 배우 정해인이 녹음에 참여한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정약용유적지 건너편에는 실학을 주제로 꾸민 실학박물관이 있다. 다산생태공원은 팔당호를 시원하게 조망하는 곳으로, 반려동물과 산책도 가능하다.
김재범 스포츠동아 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