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케이이치 타나아미: I’M THE ORIGIN’ 전시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은 타나아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백 개의 다리’로,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인 구조물이 어우러진 설치 작품이다.  사진제공ㅣ 대림미술관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케이이치 타나아미: I’M THE ORIGIN’ 전시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은 타나아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백 개의 다리’로,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인 구조물이 어우러진 설치 작품이다. 사진제공ㅣ 대림미술관




아시아 팝아트 전설이 남긴 700점의 환각적 기록
대림미술관 ‘케이이치 타나아미: I’M THE ORIGIN’ 특별전
“만약 내 그림에서 사이키델릭한 감각을 느꼈다면, 아마도 그것은 전쟁이라는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전시장 1층에 걸린 이 글귀가, 이렇게 강렬한 경고 메시지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의 작품을 1시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자니, 30분 전에 먹은 음식들이 창자 속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에서는 아시아 팝아트의 거장,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첫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193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만화가를 꿈꿨다. 무사시노 미술대학 그래픽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1960년대 미국 여행 중 앤디 워홀의 작품을 접하면서 팝아트에 눈을 뜨게 된다.

타나아미가 겪은 삶의 굴곡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이곳저곳을 피난 다니던 기억, 1981년 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해 생사의 기로에서 겪은 환각 체험은 그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낸 결정적 계기다.

타나아미는 어떤 장르나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 드로잉, 콜라주 등 다양한 형식을 선보여왔다. 대림미술관에서는 이러한 장르별 특징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특히 2층에 전시된 ‘노 모어 워(NO MORE WAR·1967)’는 아방 가르드 잡지사가 주최한 반전 포스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그의 정치적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게 담고 있다.

 타나아미가 팬데믹 당시 몰두했던 피카소 시리즈. 사진제공ㅣ대림미술관

 타나아미가 팬데믹 당시 몰두했던 피카소 시리즈. 사진제공ㅣ대림미술관

2020년 봄,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중단된 시기, 타나아미는 피카소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 시리즈에 몰두한 그는 2층 높이의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의 대작들을 쏟아냈다.

그의 작업 중에서도 사이키델릭한 감각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콜라주 섹션이다. 커다란 화폭 위에 화려한 이미지들이 빼곡하게 병치된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피로를 느끼게 할 정도다.

앤디 워홀을 선망하던 한 청년은 훗날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로 이어지는 일본 ‘슈퍼 플랫(Superflat)’ 미술 운동의 전신이 되었다. 타나아미는 지난해 8월 9일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작가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주요 작품 700여 점은 오는 6월 말까지 대림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관람객을 위한 정규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3회(오전 11시, 오후 12시, 1시) 진행된다.  

사진제공ㅣ 대림미술관

사진제공ㅣ 대림미술관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