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 」/ 최주식, 임재천 / C2미디어

「부산, 사람 」/ 최주식, 임재천 / C2미디어



“부산은 바다의 도시가 아니라, 기억의 도시였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골목, 빛 바랜 벽화, 그리고 잊힌 이름들. 시인 최주식과 사진가 임재천은 30년의 인연 끝에 「부산, 사람 」이라는 한 권의 시·사진집으로 부산의 ‘풍경 너머’를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한 시와 사진의 나열이 아니다. 50편의 시와 50장의 사진이 마치 서로에게 말을 건네듯, 부산이라는 도시의 깊은 숨을 길어올린다.

「부산, 사람 」에는 50편의 시와 더불어, 부산의 정취를 포착한 인상적인 사진들이 실려 있다. 사진은 본문 중 ‘모래바람’. 사진제공 |C2미디어

「부산, 사람 」에는 50편의 시와 더불어, 부산의 정취를 포착한 인상적인 사진들이 실려 있다. 사진은 본문 중 ‘모래바람’. 사진제공 |C2미디어

시인은 때로 황령산이 되고, 때로 영도의 조선소를 걷는 노동자의 손 안 도시락이 된다. 그 시선을 사진가는 한 장면으로 붙잡는다. 낡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오래전의 부산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건너야 할 시간의 징검다리처럼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있다. 용두산공원 꽃시계 앞에서 만나자던 약속.
그 약속, 가끔 생각나 혼자 공원 한 바퀴 하릴없이 걷던 날이.”
― 시 <용두산 엘레지> 중에서

이 책의 시작은 2003년 ‘부산’이란 이름의 포토기행이었다. 자동차생활 이라는 잡지에서 만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7년 뒤 여의도에서 재회하고, 이때 편집장이 된 최주식 시인은 잡지 연재를 위해 ‘포토기행’이란 여행 꼭지를 임재천 사진가에게 제안하고 이후 3년에 걸쳐 43개 지역을 함께 다니게 된다.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한국의 재발견>이 되었고, 결국 이 책 「부산, 사람 」으로 이어졌다.

2023년 최주식은 부산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 했는데 , 그 소식을 들은 임재천은 사진집 「한국의 발견 03 – 부산광역시」속 사진들 가운데 50점을 골라 “시를 써보라”고 건넨다. 비로소 사진 속 ‘사람’들이 시 속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온 시들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사진은 본문 중 ‘적기’. 사진제공 |C2미디어

사진은 본문 중 ‘적기’. 사진제공 |C2미디어


특히 <적기> 같은 작품은 감만동과 우암동 일대를 한때 ‘적기’라고 부르던 시대의 기억을 소환한다. 매립지 위에 지어진 동구의 매축지, 누구나 한 번쯤 기다렸던 용두산공원의 꽃시계,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낯선 듯 익숙하게 스민다.

「부산, 사람 」은 시와 사진이 배경이나 장식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새로운 형식의 책이다. 이 책은 부산이라는 장소의 이야기를 넘어, 누구에게나 있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의 감정’을 불러온다.

그리하여 이 책은 결국, 부산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책’이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