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용 명인이 빚은 고기만두. 사람의 뇌를 축소해놓은 듯 쪼글쪼글한 피가 인상적이다.

유재용 명인이 빚은 고기만두. 사람의 뇌를 축소해놓은 듯 쪼글쪼글한 피가 인상적이다.



포항 대신로 골목에 숨은 주 3일 영업 만두집
번호표도 없는 대기 시스템, 그럼에도 줄 선다
육즙 품은 만두소, 고기와 김치 모두 품격 있는 맛
장사에 별 뜻이 없어 보이는 영업시간이다. 월요일 쉬고, 수요일 쉬고, 금요일 쉰다. 일요일은 다들 쉬니 또 쉰다. 일주일에 딱 3일간만 문을 여는 만두집이라니! 영화 ‘극한직업’의 수원왕갈비통닭집 같은 곳은 아닐까.

3일이라고는 해도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오후 12시나 되어야 문을 여는데, 이 시간에 가도 긴 웨이팅을 피할 수 없다. 흔한 번호표 뽑는 기계도 없다. 손님들은 그저 자신의 바로 앞 손님의 얼굴을 기억해두고는 멀뚱멀뚱 테이블에 앉아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릴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기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은데, 눈앞에서 만두 명인이 묵묵히(그렇다. 묵묵히!) 만두를 빚는 과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왼손에 만두피를 들고, 큼직한 보울에 담긴 만두소를 수저로 떠 피에 올리고, 수저를 테이블에 탕탕 쳐서 남은 소를 떨구고, 피를 조물조물 매만져 만두를 만든다. 이 단순하지만 지극히 예술적인 과정을 12시가 될 때까지 복붙 복붙하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대신로36번길 10, ‘유재용 손만두’가 문을 여는 날은 화·목·토. 오후 12시부터 6시30분까지만 영업하는데 오후 2~5시는 브레이크 타임이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묵묵히… 묵묵히 만두를 빚고 있는 명인의 모습을 한장 남겨 보았다.

묵묵히… 묵묵히 만두를 빚고 있는 명인의 모습을 한장 남겨 보았다.


● 기다림이 빚은 명인의 만두 한 알
손님이 너무 많다보니 요즘은 홀에서 먹는 건 불가능하고, 포장만 가능하다고 한다. 메뉴도 간단하다.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딱 두 종류. 8개 들이 1팩의 가격은 7000원이다. 하지만 1팩만 사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옆에서 슬쩍 보니 대부분 5~8팩 정도를 주문하는 것 같다. 고기만두 3팩, 김치만두 3팩을 포장했다.

좌뇌와 우뇌가 고루 발달한 두뇌를 축소해놓은 것 같은 만두 생김새다. 만두는 두꺼운 피를 좋아하는 파와 얇은 피를 좋아하는 파가 있는데, 나는 확실히 두꺼운 피를 좋아하는 쪽. 만두라면 역시 중국식 왕만두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종족이다.

이왕 얇은 피의 만두라면 피가 쉽게 찢어지지 않아야 한다. 탄력이 있으면서도 ‘품위’를 지녀야 한다. 이른바 밀가루의 자존심 같은 것. 감자 수제비 같은 질감의 피는 선호하지 않는다.

유재용 명인의 만두는 얇지만 확실히 존재감이 살아있는 ‘맛있는 피’다. 육즙도 풍부하지만 줄줄 흐르는, 헤픈 육즙이 아니다. 만두소가 육즙을 충분히 머금고 있다. 슬슬 속으로 넘어가는 만두다.
● 포만시 : 포항 여행은 만두로 시작된다
김치만두도 먹어보자. 의외로 자극적이지 않은, 차분한 김치만두다. 돼지고기와 김치의 비율이 적절하고 끝맛이 은근하다. 자극적이지 않기에 고기만두와 번갈아 먹기 좋다. 고기만두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맛으로 확실히 둘 다 매력적이다.
식어도 맛있다는 평이 많았다. 냉장고에 하루 넣어뒀다가 먹어본 만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한 팩정도는 일부러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먹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국거리용 생만두도 판다. 찌지 않은 상태의 만두로, 가격은 6500원. 찌는 값이 500원인 모양이다. 모든 식재료는 국내산만 사용한다고 한다.

‘유재용 만두’가 아니라 ‘유재용 손만두’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두 손으로 한 알 한 알 빚어, 딱 하루에 정해진 양만 만드는 만두. 하루의 느릿한 리듬이 빚어내는 맛. 부디 명인의 손에 ‘오래오래’의 축복이 깃들기를.
[여밤시]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캐리어를 열고, 정보를 검색하고, 낯선 풍경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