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에서 찍은 ‘최신’ 가족사진. 삼남매의 ‘맏이’인 고지우는 “부모님이 자식 셋을 운동 선수로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고 했고, 어머니 김효정 씨는 “잘 보살펴주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잘 자라줘 대견하고 고맙다”고 했다. 왼쪽부터 첫째 고지우, 어머니 김 씨, 막내 필관, 아버지 고경태 씨, 둘째 지원. 사진제공 | 고지우 가족

얼마 전 제주에서 찍은 ‘최신’ 가족사진. 삼남매의 ‘맏이’인 고지우는 “부모님이 자식 셋을 운동 선수로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고 했고, 어머니 김효정 씨는 “잘 보살펴주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잘 자라줘 대견하고 고맙다”고 했다. 왼쪽부터 첫째 고지우, 어머니 김 씨, 막내 필관, 아버지 고경태 씨, 둘째 지원. 사진제공 | 고지우 가족


언니 고지우(23)가 지난 6월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 시즌 첫 승을 수확한 데 이어 동생 고지원(21)이 10일 끝난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지우-지원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시즌 자매 동반 우승’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동생 지원은 우승을 차지한 뒤 “남들은 (동생보다 잘 하는) 언니 때문에 내가 소외받았다고 하는데, 오히려 언니가 없었으면 더 소외됐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언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고마움을 내비쳤다.

동생의 우승 순간을 현장에서 눈물로 지켜봤던 언니는 12일 스포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원이가 무엇보다 지난해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려움을 당당히 이겨낸 동생이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며 “어렸을 때부터 지원이와 서로 둘이 의지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 노력이 이제 빛을 보는 것 같아 너무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고지우가 “우리 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합기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고경태(51) 씨, 중·고교 교사였던 어머니 김효정(46) 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매는 각각 7살, 5살 때 나란히 골프채를 처음 접한 뒤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때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고지우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 우리를 전적으로 돌봐주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둘 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게 우리 자매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스스로 이겨나가야 했고, 그래서 우리가 더 단단해지고, 남들보다 정신력도 강한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 김 씨도 “맞벌이를 한 탓에 경기가 있어도 다른 엄마들처럼 대회장을 계속 지킬 수가 없었다. 아침에 내려주고, 저녁 때 태워오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밀착 케어’는 하지 못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매끼리 더 돈독해지고 스스로 헤쳐 나가는 힘이 생긴 것 같다”며 자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도 내비쳤다.

둘이 나란히 골프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접한 격투기 영향도 컸다. 고지우는 “내가 합기도 2단, 공수도 2단”이라며 “아무래도 부모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나와 지원이 모두 운동신경도, 체력도 좋았다. 둘 모두 육상을 하기도 했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운동을 한 게 골프 치면서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 남들보다 거리가 더 나가는 것도 그렇고, 뭔가를 배웠을 때 습득하는 능력도 빠른 것 같다”고 했다.
고지우(왼쪽)가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동생 고지원을 축하하며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KLPGA

고지우(왼쪽)가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동생 고지원을 축하하며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KLPGA

자매는 프로 데뷔 후 예선 때 동반 라운드를 한 적은 있지만, 아직 챔피언조에서 맞붙은 경험은 없다. 고지우는 “그 날이 와도 그냥 선수로서,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할 것 같다. 동생이라고 봐 주는 것도 없고, 동생도 그걸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챔피언조에서 만나면 지고 싶지는 않다”며 웃었다.

둘에게는 2007년생 남동생이 한 명 있다. 프로축구 FC서울의 U-18팀인 오산고의 주장을 맡고 있는 고필관이다. 오산고 윤시호 감독이 “빼어난 실력뿐만 아니라 너무 성실하고 무엇보다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며 “앞으로 더 큰 선수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장래가 촉망받는 유망주다.

“지원이는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꾸준함도 갖췄다.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이라고 설명한 고지우는 “필관이는 엄마 아빠의 좋은 걸 다 물려받아서 성격도 제일 좋고, 제일 잘 생겼다”며 남동생도 추켜세웠다. ‘삼남매가 잘 큰 것 같다’는 말에 맏이는 “부모님께서 자식 셋을 운동 선수로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아무래도 가족의 사랑과 힘이 가장 큰 밑거름이 된 것 같다”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동생들에 대한 고마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언젠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르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큰 꿈을 갖고 있는 고지우. 사진제공  |  KLPGA

언젠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르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큰 꿈을 갖고 있는 고지우. 사진제공 | KLPGA

투어 2년차였던 2023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1승씩을 수확한 고지우는 올 잔여 시즌 목표에 대해 “우선 1승을 더해 첫 다승 시즌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밝힌 뒤 감춰뒀던 속내도 곁들였다. “내가 누구보다 욕심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게 많아서인지 한 대회만 못해도 나를 너무 자책해 다음 대회에까지 영향을 받곤 한다. 앞으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이제 여유를 갖고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것이란 생각을 갖도록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또 다른 목표”라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골프 선수’ 고지우의 꿈을 묻자 “언젠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르고 올림픽 금메달도 목에 걸고 싶다”면서 “올해 일단 세계랭킹을 끌어올려 내년 해외 투어 경험을 한 뒤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면 더 큰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