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없는 지도는 신뢰와 존중의 외교적 메시지”.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대륙 면적의 왜곡을 초래하는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의 사용을 지양하고, 보다 균형 잡힌 세계지도의 활용을 촉구하며 국토교통부등 한국 정부 관련 부처의 지도 자료의 검토와 개선을 요구했다.

반크는 그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독도’나 ‘동해’ 표기 오류를 바로잡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국내외 오류 시정에 그치지 않고 세계에 대한 편향적 인식과 왜곡을 우리 사회 안에서부터 발견하고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반크는 최근 ‘아프리카 인식 개선 캠페인’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이 역사적으로 식민 지배와 차별을 겪으며 한국과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교육과 공공 자료에서 축소되고 편향된 시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실제로 반크는 5월 국내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아프리카 관련 서술의 편향성을 문제 삼아 교육부에 전면 시정을 촉구했으며,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내용을 적극 검토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을 반크에 보내왔다.

이와 함께 반크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인 ‘지도상의 아프리카 왜곡’ 문제에 주목했다.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는 실제 면적과 크게 차이 나는 왜곡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 대륙이 실제보다 현저히 작게 표현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1569년 항해를 위한 용도로 제작된 원통형 투영 지도다. 항로의 정확한 각도를 나타내는 데는 유리했지만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면적이 과장되는 특성으로 인해 대륙 간 크기 왜곡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메르카토르 지도에서는 북반구의 그린란드가 아프리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프리카 면적의 약 1/14에 불과하다.

이러한 왜곡은 단순한 지리 정보의 오류를 넘어 특정 대륙에 대한 고정관념과 인식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서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아프리카 최대의 국제기구인 아프리카연합(AU)은 ‘Africa No Filter’ 및 ‘Speak Up Africa’가 주도하는 지도 수정 캠페인을 공식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안으로 2018년 개발된 ‘이퀄 어스(Equal Earth)’ 도법을 제시하며, 대륙의 실제 면적과 비율을 보다 정확히 반영한 지도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반크 박기태 단장은 “이제 대한민국도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가야 할 때”라며, “우리가 먼저 왜곡 없는 지도를 공공 자료에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시정을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책임 있는 변화이자 신뢰와 존중의 외교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반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하에 국토와 공간정보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들의 세계지도 활용 실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국토지리정보원(NGII) 홈페이지 및 자료에서 여전히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가 다수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KIND의 경우 ▲메인 홈페이지 ‘Business Location’ ▲2025년 영문 리플릿 ▲해외 인프라 협력 지원 프로그램 책자 등에 메르카토르 도법이 사용되었으며, 국토지리정보원은 ▲국토지리원 국문 브로셔 ▲‘어린이지도여행’ 지도백과 및 세계 백지도 등 어린이 대상 자료에도 동일한 도법이 적용되어 있다.

특히 반크는 국토정보플랫폼 내 ‘세계지도 투영법 설명서’에서 2018년에 개발된 이퀄 어스 도법이 빠져 있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설명서는 2014년 제작된 것으로 ▲로빈슨 ▲메르카토르 ▲에케르트 IV ▲구드 호몰로사인 ▲빈켈 트리펠 도법은 수록돼 있지만 최신 도법인 이퀄 어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국토지리정보원 영문 브로셔 역시 이퀄 어스를 소개하고 있지 않다.

반크는 현실적인 대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기존 모든 지도 자료를 당장 교체하긴 어렵지만 ▲지도 하단에 “본 지도는 실제 면적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 등의 안내 문구 삽입 ▲대륙별 실제 면적 비교 도표 또는 시각 자료 추가 ▲향후 제작되는 디지털 자료부터 이퀄 어스 도법 적용처럼 다음과 같은 점진적 조치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구의 모양과 면적 등이 정확하게 반영된 지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이에 지도 투영법은 각기 다른 목적에 따라 선택될 수밖에 없지만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지도라면 정확한 면적과 위치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기본적인 책임이라는 반크의 입장이다.

이번 캠페인을 주도한 이세연 청년연구원은 “공간정보를 책임지는 기관에서조차 면적 왜곡이 있는 지도를 사용한다면 왜곡된 세계관이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다”라며, “특히 어린이 대상 자료의 경우 어릴 때부터 잘못된 인식이 고착될 수 있는 만큼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기태 단장은 “국토교통부는 대한민국의 국토와 공간정보를 총괄하는 기관인 만큼 제공하는 세계지도 역시 균형 잡힌 시각을 담아야 한다”라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세계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반크는 국가정책 제안 플랫폼 ‘울림’과 ‘열림’, 그리고 국제사회 소통 플랫폼 ‘위폼(Weform)’을 통해 국내외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번 캠페인 역시 ‘울림’을 통해 국토교통부에 아프리카 지도 왜곡 문제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