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오현규가 멕시코 평가전에서 득점한 뒤 무표정으로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는 익살스러운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축구대표팀 오현규가 멕시코 평가전에서 득점한 뒤 무표정으로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는 익살스러운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옌스 카스트로프가 미국과 평가전에서 상대 수비진 사이로 볼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옌스 카스트로프가 미국과 평가전에서 상대 수비진 사이로 볼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한국축구를 향한 독일 매체들의 비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A매치 주간 내내 그랬고,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간 뒤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독일 대중지 ‘빌트’가 선봉에 섰다. 오현규(헹크)와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를 향해 돌팔매질을 이어갔다. 오현규는 올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슈투트가르트 이적이 유력시됐으나 모호한 이유로 무산됐고, 카스트로프는 최근 축구 국적을 독일에서 대한축구협회(KFA)로 바꾸면서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에 데뷔했다.

오현규의 경우는 엄연히 피해자다. 슈투트가르트가 헹크와의 당초 약속을 깨고 이적료 삭감을 시도하면서 ‘빅딜’이 무산됐는데, 9년 전 선수의 부상 이력을 이유로 댔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몸상태는 전혀 문제 없다. 다쳤던 십자인대는 당연히 멀쩡하다.

본래 헹크는 오현규를 팔 생각조차 없었다. 핵심 공격수를 새 시즌이 갓 열린 시점에서 이적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닉 볼테마데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잉글랜드)로 향하면서 최전방에 큰 구멍이 생긴 슈투트가르트는 상당히 높은 몸값을 제안하면서 헹크를 설득했고, 빅리그 입성을 꿈꾸는 선수의 뜻이 맞아 떨어지면서 협상 테이블이 차려졌다.

실제로 대화가 잘 이뤄졌고, 오현규도 독일로 떠나 메디컬테스트를 받았다. 하지만 슈투트가르트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현 몸상태엔 문제가 없으나 아주 오래 전의 부상을 들먹이면서 이적료를 깎으려 했다. 벨기에 언론에 따르면 클럽 역대 최고액인 2700만 유로(약 440억 원)까지 거론됐고, 독일 매체들은 최소 2000만 유로(약 327억 원) 이상을 언급했다.

향후 주고받는 옵션의 차이일 수 있는데 어쨌든 슈투트가르트는 약속된 이적료에 난색을 표했다. 임대 후 이적도 거론했다고 한다. 물론 헹크는 거절했고, 오현규는 허탈한 마음으로 독일에서 축구국가대표팀 합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문제는 슈투트가르트의 ‘언론 플레이’였다. ‘빌트’는 슈투트가르트의 일방적 입장만을 보도해 빈축을 샀다.

파장은 A매치 휴식기에도 계속됐다. 10일(한국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의 지오디스파크에서 열린 한국과 멕시코의 평가전에서 후반 득점포를 가동한 오현규는 자신의 무릎을 가리킨 뒤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제스처로 골 세리머니를 했다.

이에 고무된 헹크가 구단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오현규의 세리머니 장면을 공유하면서 ‘오현규 1-0 메디컬 테스트’라는 재치있는 문구를 띄웠다. ‘빌트’가 슈투트가르트의 분노를 대신해줬다. “벨기에 구단이 슈투트가르트를 조롱했지만 구단은 장기적 리스크를 안고 싶지 않았다”면서 “계속 오현규가 증명하면 계속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오현규는 더 이상 슈투트가르트에 갈 일은 없다.

여성의 상의탈의 사진을 크게 게재하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가십성 기사를 줄기차게 내보내 ‘독일의 더 선(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불리는 ‘빌트’는 ‘홍명보호’의 일원으로 미국, 멕시코전을 모두 뛴 카스트로프에게도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 국가대표로 A매치 원정을 다녀온 카스트로프는 그의 실력을 어필할 기회를 잃은데 이어 이제 시차 문제도 안게 됐다. 앞으로도 꾸준히 긴 여정을 반복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꿈을 따라가는 어린 선수를 응원하기는커녕 조롱으로 저주를 퍼부은 셈이다.

문제는 독일 매체들의 편파적 보도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현규, 카스트로프에 앞서 가장 최근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이를 경험했다. 같은 포지션 동료들이 줄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해 쉴 틈 없이 지난 시즌 엄청나게 많은 경기를 뛰어야 했던 김민재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작은 실수라도 할 때마다 과도한 삿대질로 선수를 괴롭혔다. 이적시장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위험군 선수’, ‘방출 0순위’로 거론했다.

김민재에 앞서선 대표팀 주장 손흥민(LAFC)이 독일의 인종차별을 겪었다. 2015년 8월 토트넘(잉글랜드) 입성에 앞서 몸담은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언론, 팬들의 강한 압박과 질타에 시달렸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어린 선수가 감내하기엔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그는 제대로 복수해줬다. 2018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승부에 쐐기를 박는 한국의 두 번째 골을 터트려 조국을 2-0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울고 있는 독일 관중을 보면서 통쾌했다”고 활짝 웃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