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미디어캐슬·오드·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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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로 높은 수익을 노릴 수 있는 ‘가성비 갑(甲)’ 장르, 호러 영화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무기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단순한 공포를 넘어 익숙한 소재를 기괴하게 비틀거나 참신한 콘셉트를 내세운 작품들이 잇달아 등장해 눈길을 끈다.

O 1인칭 게임부터 강아지 시점 영화까지

인기리에 상영 중인 일본 호러 ‘8번 출구’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지하도 속에서 ‘이상 현상’(옥의 티)을 찾아 탈출해야 하는 1인칭 공포 게임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으로, 관객이 마치 게임 속에 갇힌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 단순한 규칙을 영화적 서사로 확장해내며 “몰입형 공포”의 새로운 형식을 완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됐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굿보이’는 ‘전지적 강아지 시점’이라는 기발한 설정으로 시선을 끌었다. 후각과 청각이 예민한 반려견이 주인보다 먼저 미지의 존재를 감지하거나, 이상 행동을 보이는 주인을 보호하려 애쓰는 모습은 익숙한 공포 문법에 색다른 긴장감과 감동을 불어넣었다. 주인공인 리트리버 ‘인디’는 벤 레온버그 감독의 실제 반려견으로, 모든 장면이 CG 없이 실제 연기로 완성됐다.

이달 개봉하는 공포 다큐멘터리 ‘사탄의 부름’ 역시 장르의 폭을 넓히는 시도로 주목받는다. 1980년대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사탄 공황’이라는 집단적 광기에 대한 진실을 담아낸다. 사탄 숭배와 관련된 당시 사건들을 아카이브 영상과 인터뷰로 복기하며, 공포가 어떻게 사회적 히스테리와 잘못된 정보로 증폭될 수 있는지 짚어낸다. 

사진제공|TCO(주)더콘텐츠온·위드라이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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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피 흘리는 푸와 밤비

최근 호러 영화계의 파격적인 트렌드 중 하나는 ‘동심 파괴 호러’의 잇따른 등장이 있다. 친근하고 순수한 아동 작품 속 캐릭터를 잔혹한 살인마로 변형시키는 시도다.

대표작은 ‘곰돌이 푸: 피와 꿀’ 시리즈다. 1926년 A,A 밀른이 쓴 원작 동화 ‘곰돌이 푸’의 저작권 유효기간(95년)이 만료되자마자 제작된 이 작품은, 숲속에 버려진 푸가 피글렛·티거 등과 함께 인간에게 복수하는 고어(Gore) 호러물이다. 2023년 1편이 혹평에도 불구하고 저예산으로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며 시리즈화에 불을 붙였고, 속편은 오는 5일 국내 개봉한다.

디즈니의 클래식 애니메이션 ‘밤비’를 비틀어 만든 ‘블러드 밤비’ 역시 핼러윈 시즌인 지난 10월 30일 개봉했다. 어린 시절의 상징인 순수한 사슴이 잔혹한 복수의 주체로 변하는 설정이 ‘동심 파괴’ 트렌드의 정점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흐름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곰돌이 푸: 피와 꿀’과 ‘블러드 밤비’의 제작사는 ‘피터팬’과 ‘피노키오’의 호러 버전까지 더해, 주요 캐릭터들이 한데 모이는 ‘푸니버스: 몬스터 어셈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