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간을 음악으로 설명하는 무대가 열린다.
‘커티스 3총사’ 트리오 드 서울이 12월 1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덟 번째 정기연주회를 연다. 이번 공연은 작곡가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다분히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트리오 드 서울은 이번 공연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상실’과 마주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 혹은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슬픔은 사라지는 것일까, 다른 형태로 변주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스메타나와 슈베르트는 생의 말미 혹은 가장 아픈 시간을 지나며 자신이 겪은 상실을 음악 속에 남겼고, 트리오 드 서울은 이를 온전히 담아 무대 위로 길어 올린다.

1부 연주곡은 스메타나의 ‘Piano Trio in g minor, Op.15’. 작곡가는 어린 딸을 잃고 난 뒤 이 곡을 썼다.
“스메타나 트리오는 어린 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거친 통곡으로 시작하지만, 슬픔을 통과해 다시 삶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인간의 의지를 그립니다. 비극을 밀어내지 않고 온전히 끌어안으면서, 딸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하는 노래가 어떻게 슬픔을 승화해 가는지 음악으로 들려줍니다.”

이를 그대로 들여다보면, 곡의 감정적 축이 단순한 비극이나 절망이 아니라 ‘돌아오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상실을 밀어내지 않고 끌어안으며, 다시 앞으로 향하는 인간의 마음이 음악을 통해 펼쳐진다.

두 번째 연주 작품인 슈베르트의 ‘Piano Trio No.2 in E-flat Major, D.929’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슈베르트의 Piano Trio No.2는 31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작곡가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을 찬란한 환희의 선율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시기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고독을 배경으로 빛을 향해 나아가는 감정이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슬픔을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조용히 남기는 곡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피아니스트 박수진, 첼리스트 최정주. 세 사람은 모두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의 명문 커티스 음악원에서 음악적 기반을 다졌고, 각자의 분야에서 풍부한 무대 경험과 교육 경력을 쌓아온 연주자들이다.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피아니스트 박수진, 첼리스트 최정주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피아니스트 박수진, 첼리스트 최정주


유시연은 17세 동아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서울대 재학 중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영국 왕립음악대·예일대·뉴욕주립대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2002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테마콘서트를 기획해 이어오며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적 세계관을 형성해 왔다. 현재 숙명여대 음악대학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박수진은 커티스 학사와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전문연주자과정, 그리고 피바디 음대 박사까지 거치며 탄탄한 이력을 쌓았다. 국내 주요 콩쿠르 우승,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 프랑스 국제콩쿠르 입상 등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총 8회에 걸쳐 완주했다. 현재 숙명여대 교수다.

최정주는 커티스 학사, 줄리아드 석사·전문연주자과정, 뉴욕주립대 박사를 거친 연주자로, 12세 서울시향 협연 데뷔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 등을 통해 이름을 알려왔다. 현재 추계예대 부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세 연주자가 함께하는 트리오 드 서울은 2014년 창단 이후 여러 실내악 무대에서 활동을 지속해왔다. 지방 중·고등학교를 찾아가는 ‘넥스트 클래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클래식 음악 교육에도 꾸준히 힘쓰고 있다. 이번 공연 역시 유시연의 해설이 함께해 관객들이 작품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삶은 유한하지만, 음악은 계속해서 변주되며 삶과 죽음, 고통과 해방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을 노래한 작곡가들의 철학적인 여정입니다.”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한 두 작품이 트리오 드 서울의 연주를 통해 겨울 공연장에서 어떤 울림을 남길지 주목된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