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서울에서의멋진하루

입력 2008-04-2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저는 20년 째 남편과 함께 가전제품 파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손님도 없고, 꽃들이 활짝 피어서 완연한 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가게에 앉아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는데, 마침 꽃놀이 다녀오는 사람들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저는“아이고∼ 느무 이쁘다. 저 사람들은 무슨 팔자가 저리 좋아서 저런 데 꽃구경도 다니노” 하고 탄성을 질렀는데, 갑자기 남편이 버럭 화를 내는 겁니다. “우리도 예전에 다 갔다왔던긴데, 뭐가 그리 부럽다 카노! 그리 꽃이 보고 싶으면 저∼ 공원 나가봐라! 꽃이 천지다!” 이러는 겁니다. 그냥 혼자 중얼거린 건데 남편이 갑자기 말을 딱 끊어버리니까 좀 야속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밀어뒀던 영수증 정리나 하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예전에 받아놨던 구두티켓이 보였습니다. 뒷면을 보니까 대도시 백화점에서만 쓸 수 있는 티켓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남편한테 보여줬는데, 남편이 “니 지금 밖에 나가자고 내 꼬시는 거재? 알았다 마∼ 휴일이라 손님도 없고, 코에 바람이나 넣으러 가자”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얼른, 이왕 가는 거 서울로 가자고 했습니다. 거기 혼자 있는 딸애한테 반찬도 가져다주고, 그 유명한 청계천도 보자고 말입니다. 남편이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명절 빼고는 닫아본 적 없는 가게문을 그 날 처음 닫아보았습니다. 아는 집에서 네비게이션까지 빌려서,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출발한 여행이라 더 기분이 좋더군요. 차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봄바람과 함께 산등성이에 탐스러운 꽃들을 보니, ‘와∼∼∼아 느무 이쁘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2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딸네 집에 반찬 가져다주고, 저희 부부는 차를 끌고 서울 시내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서울 시내에 차가 얼마나 많은지 베테랑 운전사인 저희 남편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바짝 얼어있더군요. 그렇게 어렵게 백화점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구두티켓 쓸 수 있는 매장 찾는 게 또 일이었습니다. 서울은 뭐가 이렇게 넓고 크기만 한 건지 그 넓은 곳을 뱅뱅 돌아서 겨우 찾았는데, 수제화 파는 곳이라 구두 값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구두 티켓 가격은 15만원인데, 진열 된 구두는 제일 싼 것도 20만원이 넘었습니다. 남편은 제 손을 잡아끌며 빨리 나가자고 했지만, 저는 이 때 아니면 언제 남편한테 이런 좋은 구두를 사 줄까 싶어 두 눈 딱 감고, 시장에서 샀으면 구두 두 켤레는 더 살 수 있는 돈을 더 보태고, 남편에게 아주 좋은 구두 한 켤레를 사줬답니다. 그 다음부턴 어디를 갈까 하다가 도로 위를 그냥 달렸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또 언제 서울에 올라오겠습니까. 한번 왔을 때 신기한 건 다 봐야했습니다. 그렇게 좀 달리다가 저희는 이번엔 남산타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도로 옆에 바로 보이기에 가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보이는 남산타워가 어찌나 멀리 있는지,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갔는데도,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남산에 도착했을 땐 기운이 쏙 빠졌습니다. 힘들게 올라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은 말로만 듣던 대로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 숲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높은 건물들이 많은지, 전망대 구경하고, 근처 맛있는 집에 가서 밥도 먹고, 그렇게 해질 무렵이 됐습니다. 저희는 정말 가고 싶었던 청계천을 드디어 가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도착하긴 했지만, 청계천의 밤 야경은 너무나 멋졌습니다.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고, 물소리도 들리고, 조명도 좋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 틈 속에서 저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답니다. 옛날 데이트하는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갑자기 떠났던 여행 다음에 또 언제 이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하루만큼은 좋았습니다. 남편 말대로 코에 제대로 바람 넣어주고, 아주 즐겁게 보낸 하루였습니다. 너무나 즐거웠던 봄 여행 앞으로도 여운이 오래오래 계속 될 것 같습니다. 경북 상주|정미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매일 오전 09:05-11:00 수도권 주파수 FM 106.1MHz www.kbs.co.kr/radio/happyfm/hello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