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오늘보다나은내일을믿어요

입력 2008-04-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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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영어 학원 다니면 안 될까??” 올 해 중학교 들어간 딸아이가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보낸 안내장을 내밀었는데, 거기에는 앞으로 영어랑 수학은 학생들 수준에 맞춰, 반을 나눠서 공부를 하겠다고 씌어있더군요. 아무래도 딸아이는 그게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해주지 못 했습니다. 부모마음에는 당연히 아이가 해달라는 거 다 들어주고 싶었지요. 하지만 몇 개월 전에 했던 남편의 말이 생각나서 저 혼자서는 선뜻 ‘그렇게 해라’고 대답을 못 하겠더군요. 그러니까 작년 가을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첫째와 그 보다 더 어린 둘째를 동시에 같은 학원에 보냈습니다. 이렇게 둘을 동시에 보내면 학원비를 좀 깎아 줬거든요. 그동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은 문 근처도 못 가보고, 늘 집에서 문제집을 풀게 하다가 친구들도 있는 학원을 보내주니 아이들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부터 학원에서 학원비를 좀 더 올려 받겠다고 그랬습니다. 이제 큰애가 중학생이 되기 때문에 초등학생 비용보다는 더 많이 내야한다는 얘기였지요. 그래서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거의 3배에 가까운 비용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날 저녁 남편에게 이 사실을 의논했고, 남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 학원은 다음에 보내자고 그러더군요. 아마 아이들 두 명과 연세 많으신 아버님까지 혼자서 다섯 식구를 책임지려니 힘이 많이 드는 모양이었습니다. 남편은 동네에서 조그마한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경기가 좋을 때는 기사를 두 명이나 두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물가가 오르고 기름값이 오르면서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결국 데리고 있던 기사들도 모두 내보내게 됐지요. 저라도 맞벌이를 해서 도와주면 좋을 텐데, 연세도 많고 몸도 불편한 시아버지가 계셔서 그것 역시 쉽지가 않네요. 사실, 전 혼자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만약 지금 살아 계신 분이 아버님이 아니라 어머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님이 살아 계시면 살림도 좀 맡기고 내가 맞벌이도 나갈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지요. 어쨌든 남편이 너무 혼자 고생을 하니까 저는 안쓰러운 마음에 부업도 알아봤는데, 그것 역시 쉽게 구해지질 않더군요. 다행히 동네에 아는 언니가 소개를 시켜줘서, 얼마 전부터 액세서리와 관련된 부업을 하게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지만, 하루 꼬박 앉아서 일해봐야 만 몇 천원 받을 수 있더군요. 저는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활정보지를 뒤져보기도 했는데, ‘괜찮은 곳이다’하고 전화를 걸면 무슨 계약금을 먼저 가져오라고 하고, 또 맘에 들어서 전화를 하면 나이제한을 두고 하여튼 아무리 생활정보지를 보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그렇게 매일 매일 일을 구해보고, 그게 안 돼서 속상해 하고 그랬더니 남편이 “자꾸 맘 상하니까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그러더군요. 지금 하고 있는 부업도 돈은 안 되고 힘만 드니까 그만두고, 저보고 살림만 하라고 그랬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남편을 도와주고 싶어서 한 일이었는데, 생활비도 벌고, 아이 학원비도 벌고 싶어서 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남편 맘을 더 아프게 한 것 같아 그것도 참 미안했습니다. 어쨌든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 그리고 남편의 두 어깨를 조금 더 가볍게 해주지 못하는 안쓰러움이 요즘 제 가슴속에 가득합니다. 그런 거 생각하면 자꾸 우울해지지만 그래도 힘을 좀 더 내볼까 합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편해 질테니 말이지요. 지금 당장은 아이 학원도 못 보내줄 형편이지만, 언젠가 살림살이 펴져서 우리 가족 모두 웃게 될 날이 오리라 저는 믿습니다. 경기도 성남|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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