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C·S·I]‘무릎팍’이오프라보다뜨는이유

입력 2008-05-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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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나 ‘오프라 윈프리 쇼’같은 장수 토크쇼가 없는 걸까, 하고 늘 아쉽던 차였다. 설마 오프라의 모성적 유머, 데이비드의 이지적인 시니컬함, 하물며 자니윤의 느물느물한 음담패설도 구사할 줄 모르는 강호동이 해낼 줄 몰랐다. 지성, 미모, 게다가 성격조차(?) 받쳐주지 않는 강호동의 ‘광 팬’은 분명 유재석보다 적겠지만, 강호동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만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전매특허다. 그 어떤 유명인사가 출연해도 총천연색 물귀신 작전으로 끝끝내 게스트의 우아함을 망가뜨리고 마는 얼치기 도사들. ‘무릎팍도사’는 한국형 토크쇼의 신기원을 열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프라나 데이비드가 아니라 응어리 진 가슴을 툭 터놓을 수 있는 저마다의 따스한 ‘도사님’ 혹은 ‘선녀님’임을 각인시켰다. ‘무릎팍’의 첫 번째 전매특허는 아무래도 그 얼토당토않은 오두방정 막춤의 향연이다. 방문을 여는 순간 게스트의 혼을 쏙 빼놓는 세 도사들의 춤은 언제 봐도 어이상실이다. 그 막춤의 임팩트에 이미 넋이 나간 게스트들은 소파가 아니라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조금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는 듯하다. 그 주술적 편안함이야말로 굳게 닫힌 스타의 입술을 여는 비장의 무기가 아닐까. ‘무릎팍’의 두 번째 전매특허는 단연 ‘너 망가지고 나 망가지는’ 물귀신 작전이다. 남들을 헐뜯어 놓고 자기혼자 독야청청한 일방적 공격이 아니라, 작가들의 기상천외한 자막을 통해 자신은 수십 배 더 망가져 주는 강호동의 막무가내 물귀신 작전에, 자존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게스트들은 하나같이 솔직함의 카드를 집어 든다. 덕분에 우리는 가요계의 여왕 패티 김이 난생 처음 ‘김혜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 군데도 성형한 적이 없으세요?”라는 질문에 패티김은 “쌍꺼풀도 성형이예요?”라고 반문했다.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은 박세리는 “왜 아버지는 저에게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나요?”라고 수줍은 넋두리를 늘어놨다. 또한 루머와 악플의 여왕 이영자는 “웃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우스운 사람 되서 미안합니다”라는 구슬픈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고, ‘조국을 메다꽂은’ 누명을 쓴 추성훈의 한 맺힌 절규가 ‘하나의 사랑’으로 굽이치는 감미로운 화해의 멜로디에 전율했다. 만약 ‘무릎팍’의 강호동을 게스트로 초대한다면 과연 누가 강호동을 이토록 제압할 수 있을까. 무서운 덩치와 어처구니없는 백치미로 스타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강호동도 고민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매너리즘에 빠진 ‘무릎팍’을 어떻게 부흥시킬까요?”라는 강호동의 고민을 듣는다면?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 변화를 위한 변화는 필요 없다. 모두가 망가져도 아무도 상처 입지 않는 따스함, ‘무릎팍’이여, 변치마라! 스타에 대한 근거 없는 비호감을 근거 있는 호감으로 바꾸는 마술적 연금술. 그것이야말로 변치 말아야 할 토크쇼의 비법이며, ‘비판 2:칭찬 8’로 이루어진 인터뷰의 황금 비율이다. 정여울 문화, 문학 비평가 TV와 책, 대중문화와 문학 사이의 공존을 꿈꾸는 문화, 문학 비평 가. 저서로는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내 서재 에 꽂은 작은 안테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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