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온편지]영화의천국=좀도둑의낙원

입력 2008-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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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영화 축제라는 칸 국제영화제. 이제 3일째 머물고 있지만 매일 외출할 때마다 불안함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따뜻한 지중해 바람과 햇살, 그리고 거장들의 영화를 먼저 볼 수 있는 기쁨에 행복하지만 숙소에 남겨둔 소지품은 항상 걱정거리입니다. 칸 국제영화제를 찾는 수만명의 관광객들과 함께 수천명의 좀도둑, 소매치기들도 행복하게(?) 이 영화 축제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구 7만명의 작은 도시지만 걸어서 5분 거리마다 한 번씩 경찰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경찰이 배치될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소매치기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영화 팬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습니다. 좀도둑도 극성입니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전등 스위치를 확인하다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의 상가 1층 가게에나 있을 법한 시커먼 알루미늄 셔터가 모든 창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꼭 셔터를 내리고 외출하라는 당부를 들을 정도로 좀도둑이 많기 때문이지요. 경찰관이기엔 너무 뚱뚱해 보이는 한 경관에게 물어보니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탈리아에서도 원정을 온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버릇이 있었지만 소매치기가 무서워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니 바지가 불룩해 불편합니다. 매일 오후 뤼미에르 대극장 앞은 수많은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19일에는 모니카 벨루치가 레드카펫에 나타나 온 거리가 서울의 출근길 지하철역보다 혼잡스러웠습니다. 늘씬한 미녀모델 같은 남자들까지 거리에 넘쳐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지갑은 사라집니다. 매년 5월 좀도둑과 소매치기 천국이 되지만 그래도 칸의 시민들은 행복해보입니다. 매년 2만여명의 영화제 및 필름마켓 참가자, 4000명의 취재진 그리고 수만명의 관광객들이 일으키는 경제적 효과는 막대합니다. 제가 묵는 민박집 주인도 집을 통째로 빌려주고 온 가족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정말 행복한 칸 시민들입니다. 칸(프랑스)|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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