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영환도사는마귀도사?

입력 2008-06-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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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김영환 8단이 ‘입신’에 올랐다는 소식이 한국기원으로부터 날아왔습니다. 프로라면 누구나 입단을 하면서부터 꿈에도 그려 마지않는 9단이 되었다니 축하부터 보내고 볼 일입니다. 1970년 부산태생이니 올해로 서른여덟. 젊다 하기엔 좀 묵었고, 그렇다고 중견이라 하자니 팽팽한 피부에 미안할 따름입니다. 1987년에 입단을 해 프로기사 생활한 지는 21년이나 되었지요. 김영환 8단, 아니 9단은 유독 팬들이 많은 행복한 기사입니다.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영환도사’라는 애칭이 유명하지요. 왕년에 영화 좀 보셨다는 분들은 한국의 ‘강시문화’를 선도(?)한 ‘영환도사’ 시리즈를 기억하실 겁니다. 김영환 9단의 별명은 이 영화제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기실 도사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지요. 오히려 김영환 9단을 잘 아는, 가까운 이들 사이에서 그를 칭하는 별명은 따로 있답니다. 바로 이름만 들어도 ‘음 …’ 신음이 절로 나오는 ‘마귀’!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그가 바둑을 둘 때, 특히 하수를 다룰 때는 완전 ‘마귀’라는 사실을요. 한국기원의 C모 차장은 김영환 9단과 바둑 둔 일을 떠올리면 요즘도 소주 스트레이트 석 잔이 고스란히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몇 년 전 C 차장은 지방에 일이 있어 김영환 9단과 동행한 일이 있었지요.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는데 김 9단이 “심심한데 바둑이나 한 판 두시죠”했다는 얘기입니다. 평소 천하의 이창호도 석 점이면 지지는 않으리란 소신을 가져 온 순진한 C 차장은 바둑판 앞에 당당히 석 점을 깔았습니다. 김9단이 씨익 웃더랍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날 밤 C 차장은 연패를 거듭한 끝에 결국 치욕의 7점까지 내려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지요. 망연자실한 C 차장에게 김 9단은 “바둑이 싫으시면 고스톱이나 …” 하고 옆구리를 찌르더라는 것이죠. 그리고 딱 네 판 만에 C 차장은 출장비를 고스란히 김 9단에게 털리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C 차장은 이날 이후 ‘승부계’에서 은퇴하는 한편 인터넷 바둑대국실을 떠돌며 새까만 18급 하수들만 괴롭히고 다니는 ‘변태마귀’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김 9단은 바둑TV에서 한때 도사복장에 허연 가발을 쓰고 아마추어들과 접바둑을 두는‘영환도사를 잡아라’란 방송에 장기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 9단은 순박한 하수들을 상대로 마귀의 본령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106전 102승 4패라는 악마적(?) 승률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이 기록은 아마도 바둑판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프로기사가 미안해서라도) 깨어지지 않을 대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둑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입신에 등극한 김영환 9단. 부디 앞으로는 ‘마신(魔神)’의 모습일랑 프로하고 둘 때만 보여주시고, 하수들에게는 사랑과 은혜를 가득 베풀어 주시길.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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