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동생, 여대생, 루머, 그리고 남장여자. 누구든 몇 개의 단어로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다. 올 해 만 21살이 된 배우 문근영의 삶을 몇 개의 단어로 압축한다면 대부분 이 네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이 단어들은 그녀를 아는 모두가 공감하고 또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특히 문근영 본인이 이 단어들에 대해 갖고 있는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어 했다. 과거 그녀는 영화 ‘어린 신부’와 일련의 CF를 통해 마치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귀엽고 천진한 모습으로 남녀노소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을 준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후 연기자 문근영의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다.
그렇게 3년의 공백. 이제 문근영(21)이 20대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딘 것은 ‘너무 일찍 시집 간 고딩’만큼 파격적인 ‘남장여자’다. 9월 SBS에서 방영할 예정인 드라마 ‘바람의 화원’(극본 이은영·연출 장태유)에서 그녀는 남장을 하고 도화서에 들어갔다는 논란의 인물 신윤복을 맡았다.
문근영에게 연기는 이렇듯 만만치 않은 모험의 연속이었다. 하긴 배우가 된 이후 문근영의 삶도 그에 못지 않다. ‘국민 여동생’으로 보낸 청소년기를 뒤로 하고 숙녀가 되자마자 찾아온 것은 민망한 악성 루머였다. 누가 문근영이 곧게 뻗은 탄탄대로만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 국민 여동생이란 타이틀이 부담스러운가. 부담스럽다면 어떤 기분인가.
“여동생은 ‘배우 문근영’에게 오는 압박이다. 늘 여동생으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에 비해 국민이란 단어는 ‘인간 문근영’에게 오는 압박이다. ‘늘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 이런 것이다.”
- 이제 물리적인 나이로도 성인이 됐다. 당신의 성인식은 좀 요란했다. 모두가 참견하고, 모두가 걱정했고, 때론 모두가 다그쳤다.
“그런 의미의 성인식이라면 계속 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왜 사람들이 나에게 ‘더 이상 크지 마, 이대로 있어’라고 하는지 요즘 조금은 이해가 간다. 스물다섯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어색하다.(웃음)”
-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고약한 소문에 휩싸인 적도 있다.
“나는 올 해 초에야 들었다. 그때 머릿 속에 딱 떠오른 사람이 엄마였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이미 들었거나 앞으로 듣게 되면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라고 말이다.”
- 루머를 접했을 때 기분은 어땠는가.
“근거 있는 소문이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 뭐라 말할 거리라도 있지 않겠나. 과거 ‘문근영 못됐다’는 말조차 안했던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느꼈다. ‘마음이 변한다는 것에 대한 좋은 예구나. 내가 조금 미움을 받고 있구나’라고.”
- 대중은 어느 순간 열광하다가, 바로 냉정해진다. 그럴 때 기분은.
“냉정해지는 계기가 있었다. 연영과가 아닌 국문과를 선택했던 대학교 수시입학 때가 아닐까. 수시모집 제도 하에서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그랬는데…. 부정입학을 한 것도 아닌데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안타까웠다.”
- 문근영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는 사회에 대한 다양한 기부활동인데.
“솔직히 내 만족이란 생각이 드는데 너무 이기적인가? 기부를 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행복해진다. 도움을 준 사람들이 편지를 써 보내줄 때, 그런 피드백을 받았을 때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했나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공부방을 지어준다던가 하는 기부 형태는 도서관에 근무하는 어머니의 영향인가.
“기부라는 걸 가르쳐준 사람은 엄마다. 요즘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서 매우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해남 땅끝 마을 친구들이다. 어렵게 지내는 친구들이 용돈을 빨간 돼지 저금통에 모아 다른 친구들을 도왔다는 것이다. ‘근영 누나가 도움을 줬듯이 우리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고 전해 들었다. ‘나누면 더 불어난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 얻은 내 삶의 또 다른 지표가 됐다.”
- 20대 문근영이 첫 연기가 남장여자다. 아직 성인 여성의 연기를 보여주는 게 무리란 걸까, 두려운가, 아니면 충격 완화를 위한 연착륙인가.
“내 생각은 단순했다. 그 역이 흥미로웠고 그래서 해보고 싶던 것이 전부다. 남장여자란 역할에 대해 여러 말이 나오는 걸 안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다 맞는 말 일 수 있다. ‘성인, 여인’ 이런 단어가 솔직히 부담은 된다.”
- 남장여자란 역할이 성공하면 ‘국민 여동생’에 이은 어떤 타이틀을 얻게 될까.
“굳이 타이틀이 필요할까. 또 그 이름에 얽매이는 고생을 하라고….”
- 배우로서 어느 한 이미지가 큰 사랑을 받으면 오히려 벗어나기 힘들다고 하는데….
“내가 변하려 애쓴다는 것은 오해다. 나 스스로 거울을 보면서 ‘아직 표정이나 생김새에서 아이 같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얼굴에 시간이 묻어나길 바랄 수 밖에 없다. 더디고 조금 빠름이란 속도차가 있을 뿐 누구나 늙지 않는가. 아직도 아이 같은 이 모습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
- 대중은 변치 않길 바라면서 또 변하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그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을텐데.
“한 때는 그랬다. 그 답을 팬들에게서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대중의 입장에서 봤을 때 둘 다 맞는 것이지 않은가.”
“나는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10대 소녀 스타와 인터뷰를 할 때 암묵적으로 피하는 질문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애다. 문근영이 ‘이제는 숙녀’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예 물어볼 생각조차 안했던 질문들을 던졌을 때였다. 미팅은 해봤나? 그렇다면 연애는?, 사랑관은 무엇인지…. 만으로 스물 한 살, 이제 대학 3학년이 된 문근영은 ‘국민여동생’의 이미지 때문에 다소 어색했던 질문들을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 여대생 문근영은 어떻게 사나. 미팅이나 소개팅은.
“다 빼더라. 친구들이 아예 물어볼 생각도 안하는 것 같다.”
- 문근영에게 대시하는 남학생도 있나. 사인해 달라는 치기어린 장난 말고.
“사인만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요청에 나는 전혀 호응을 안한다. 물론 그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도 안다. 학교에서 문근영은 연예인이 아니다.”
- 문근영의 연애관은 무엇인가.
“둘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겠다. 그것은 친구 사이에서도 그렇다. 나는 내게 믿음 주는 사람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한테도 그런 믿음을 느꼈으면 좋겠고…”
- 3학년은 학교로 치면 제법 ‘고참’에 속한다. 후배들에게 술도 사주나.
“잘 따르는 후배들이 서너 명 있다.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때론 술도 먹는다.”
- 문근영에게 대학생활은 어떤 의미인가.
“항상 TV에서 연예인을 보는 친구들은 연예계가 꿈같은 세상일 수도 있다. 항상 주목을 받으며 지내야 하는 삶이 조금 편치 않은 내게는 반대로 학교가 그렇다. 과제에 ‘쩔어보기도’ 하고, 친구들하고 ‘땡땡이’도 치고, 아직 밤을 새며 마시지는 못했지만 학우들과 학교 앞 주막에서 싸게 술을 먹는다던가, 이런 게 내게는 꿈만 같다.”
- 졸업 후 더 공부할 계획은 있는가.
“굳이 욕심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공부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 같다. 전공인 국문학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과 연극영화학을 공부해야하는 건 아닌가를 놓고 고민한다. 연극영화과는 본업인 연기를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