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행복은멀리있지않아요

입력 2008-06-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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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입니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 그 때 할 수 있었던 군것질 중 하나가 ‘달고나’였습니다. 연탄불에 설탕 담긴 국자를 살포시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먹던 거였습니다. 저는 그 달고나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제 친구와 손을 잡고 달고나를 먹으러 가게에 갔습니다. 그 가게에는 이미 먼저 와서 달고나를 해 먹고 있었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옆에서 친구와 달고나를 만들며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 옆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국자를 들고 장난을 치던 남학생이 그만 뜨겁게 녹아있는 설탕을 제 왼쪽 손에 다 쏟아 붓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전 너무 뜨거워 비명을 지르며 손에 얹어진 그 뜨거운 설탕 떼어내려고 오른쪽 팔로 문질러 댔습니다. 그걸 보신 가게 아주머니가 후다닥 달려와 바가지로 제게 찬물을 끼얹으셨습니다. 저는 그 와중에도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그 남학생을 찾았지만, 그 소년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두려웠는지 이미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같이 왔던 제 친구는 심하게 다쳐서 허우적대는 저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급히 저희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어머니는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저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다니셨습니다. 이미 날이 어둑해진 상황이라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습니다. 저는 겨우 동네 약국에서 응급처치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일찍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큰 상처를 입은 제 왼쪽 손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그 말씀에 어머니는 그대로 주저앉아 넋을 놓아버리셨습니다. 저도 그만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오진이었는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 왼쪽 손에 난 큰 상처는 점점 아물어갔습니다. 오히려 제가 너무 뜨거워 문질러댔던 제 오른쪽 팔에 큰 상처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저는 6학년 마지막 학기를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오른 팔이 아파 제대로 씻지를 못 했습니다. 생계를 꾸리느라 늘 바쁘셨던 어머니가 절 많이 챙겨주지 못 하신 탓에, 제 몸에 그만 ‘이’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제 짝이 그걸 알고 우리 반 아이들 전체에 소문을 냈습니다. 저는 지독한 놀림과 따돌림 속에 겨우 겨우 초등학교 졸업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그래도 놀림과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는데, 하복 교복이 반팔이라 오히려 제 흉터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가뜩이나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저는 툭하면 울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더 위축이 되어, 외골수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제가 스물여섯이 되던 해! 저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휠체어를 탄 분이 조금은 가파르게 보이는 곳을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제가 도우려고 하자 그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비록 몸은 불편한 분이셨지만, 의지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한 분 같았습니다. 문득 지난 10여 년의 제 세월들이 생각나며 제 스스로 참 바보 같았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불편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남의 이목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재밌고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내가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로 저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며 내게 주어진 행복을 잊고 살지 말자! 그런 바보 같은 삶은 지금 이 순간부터 그만두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꾼 뒤로 제게 새로운 세상이 보였습니다. 저를 많이 아껴주고 이해해 주는 둘도 없는 평생의 짝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정말 멀리서만 찾던 행복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제 아픔을 얘기한 건 처음인데, 저는 지금 이 순간 가슴 한 곳이 뻥 뚫린 것 같고, 마음이 아주 후련합니다. 대구 중구|이현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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