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자장면한그릇에콩닥콩닥

입력 2008-06-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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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입니다. 제가 지금 대학교에 다니는 저희 딸을 임신했을 때, 왜 그렇게 눈앞에 자장면이 아른거렸는지 모릅니다. 남편은 마침 장기 출장 중이었습니다. 시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분들이라 어디 나가서 외식을 한다든가, 허튼 곳에 돈 쓰시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또 엄하고 무뚝뚝한 분들이라 어려워서 저는 감히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며칠 동안을 끙끙 앓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시부모님께서 서울에 잔치가 있다고 집을 비우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오늘이 기회다’ 생각을 했습니다. 시부모님 배웅해 드리고 총알같이 중국집에 전화했더니, 너무 일찍 전화를 한 바람에 11시 30분 이후에나 전화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11시 30분을 기다리며 집에 쌓여 있는 빨래를 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전화했더니 이번엔 “죄송한데요. 거기까지 자장면 한 그릇만 들고 배달 갈 수는 없는데요. 워낙 멀리 있는 시골이라서…”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하긴, 버스도 하루에 두 대 밖에 없는 시골마을이었으니, 자장면집 주인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아니면 자장면을 못 먹겠다 싶어서 저는 탕수육과 짬뽕과 자장면 곱빼기를 같이 시켰습니다. 먹을 사람이라고는 저 혼자 밖에 없었지만, 그 날은 “하늘이 무너져도 자장면을 먹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습니다. 얼마 후 주문한 음식들이 왔고, 저는 거금의 음식값을 계산하고, 거실에 쭉∼ 놓여 있는 음식들을 보는데, ‘내가 미쳤지. 이 많은 음식을 어떻게 다 먹으려고 시켰을까’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어쨌든 그 먹고 싶던 자장면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얼른 먹고, 나머지 음식들을 쳐다봤습니다. 먹고 싶다는 욕구 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눈앞엔 시부모님의 화난 얼굴이 떠오르고, 지금 이 상황을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질 텐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순간 저는 마당에 있는 저희 집 누렁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운 짬뽕 국물은 빼고, 목에 걸릴 것 같은 조개껍질도 빼고, ‘누렁이도 호사 좀 누려야지’ 생각하고 나머지 음식들을 담아 주었습니다. 누렁이는 오랜만에 먹어보는 그 음식들이 반가웠는지 꼬리를 흔들며 다 먹었고, 저는 속으로 완전범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부터 누렁이가 힘이 없는 것 같더니, 어디가 아픈지 설사를 하면서 비실비실 거렸습니다. 아버님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셔서 읍내 병원으로 데려가셨고, 저는 속으로 ‘어떡하나? 나 때문에 누렁이 죽으면 어쩌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는 어제 내가 자장면 시켜 먹은 걸 아버님이 알게 되시면 어떡하나 그게 더 걱정이었습니다. 역시나 읍내에 다녀오신 아버님은 제가 중국요리를 시켜먹었다는 걸 아시고, 그걸 왜 누렁이한테 줬냐고 화를 내셨습니다. 저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아버님! 사실은 제가 자장면이 먹고 싶어서요. 그런데 한 그릇은 배달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리고 음식 남으면 아버님 어머님 아시고 혼내실까봐” 이러면서 떠듬떠듬 전후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어이구 이것아∼ 그럼 미리 얘기를 했어야지. 우리가 너한테 자장면 한 그릇 못 사주겠냐. 괜히 안 먹던 거 먹은 누렁이만 병이 낫잖니?”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 날 그 사건 후 저는 시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아무 탈 없이 지금의 딸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뱃속에서 자장면 곱빼기를 먹었던 저희 딸은, 지금도 자장면이라고 하면 제일 좋아하며 달려든답니다. 충북 보은|박영옥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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