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시어머니의변신은무죄

입력 2008-07-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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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멀미 때문에 자식들 집에 잘 다니시지 않으셨던 시어머니께서 이른 새벽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에미냐? 오늘부터 늬 아부지는 동네에서 관광 가신다고 안 계시니 밥 수발 헐 일도 읍꼬, 밭일도 느슨한께 느그들 집으로 한바퀴 돌아불란디… 어디 집 비우지 말그라”하시며 당신 말씀만 하시고 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는 언제 출발해서 언제쯤 도착하실지 여쭤보려고 시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떠나신 건지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얼른 집부터 치워놓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불고기 거리를 좀 사려고 막 나서려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 바로 초인종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신 어머니께선 집에 오시자마자 “시방, 올라고 맘 먹은거 새벽 첫차로 와부렸다. 에미야, 배고픈디 뭐 먹을 것 좀 없냐?” 하셨습니다. 얼핏 스친 어머니의 모습에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얼굴에는 곱게 분을 바르시고 입술에는 핑크빛 루즈까지 바르셨습니다. 게다가 맨날 몸빼 바지에 스웨터만 걸치고 편하게 지내셨던 분이 나풀거리는 치마까지 입으셨습니다. 저는 결혼해서 처음 보는 어머님의 변신에 식사를 챙겨드리면서 “어머님, 화장에 예쁘게 차려입으시고,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했더니 어머님 말씀이 “내가 평생을 흙 속에서만 살다 죽었빌면 뭐 허나 싶어서, 느그 아부지 3일간 관광 가셨을 동안 느그들 집 한번 돌아보려고 왔제. 왜 평소랑 달라서 이상허냐?” 하시는 겁니다. 저는 처음 보는 어머님의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고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꾸미고 다니시라고, 정말 예쁘시다고 칭찬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부끄러워 하시면서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께서는 예쁘게 꽃단장을 하시고는 근처에 사는 시누이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시누이 역시 변신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정말 우리 엄니 맞아요? 너무 예뻐져서 같이 다니면 할머니가 아니라 언니라고 하겠어요”라며 어머니를 놀렸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갑작스런 출타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나이 드신 어머님께서 아무리 농사만 지으셨지만 시골에 사셔도 여자는 역시 가꾸기 나름이었습니다. 지난해 어머님 생신 때 혹시나 하고 핑크색 루즈에 분을 사드렸는데, ‘왜 진작에 사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예쁘게 하고 다니세요∼ 제가 화장품 많이 사드릴게요∼” 경기 수원|김경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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