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셋째조르는남편말려주세요

입력 2008-07-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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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큰 애를 처음 임신했을 때 저는 입맛이 어찌나 좋은지 그 때 너무 잘 먹어서 몸무게가 26kg이나 늘어났습니다. 그랬으니 뱃속에 아이도 덩달아 크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정일을 이틀 남겨놓고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되면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첫 아이라 어찌나 떨리고 무섭던지 심장이 두근두근했습니다. 회사에서 조퇴하고 온 남편은 제 병실에 와서 잠깐 얼굴을 비추고, “나 잠깐 나갔다 올게” 하고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함흥차사가 된 겁니다. 저는 불안한 마음에 “엄마∼ 이 사람 어디 갔어? 빨리 좀 오라고 해. 나 금방 아기 낳을 것 같단 말이야∼” 하고 떼를 썼습니다. 엄마가 “늬 서방 말여. 시방 병원에 없어야∼ 얼라 나오믄 태우고 간다꼬, 카센탄가 어딘가에 가서 차 갖고 온다 허더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오질 않았고, 한참 후에 나타나서 대기실 문을 쓰윽 열더니 “당신 많이 아파? 아직 나올 때 안됐지?” 하고 얄밉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힘이 다 빠져서 “몰라 몰라∼ 나 지금 말할 힘도 없어∼ 그러니까 자기 어디가지 말고 내 옆에 좀 있어∼ 나 진짜 죽을 거 같단 말이야∼”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남자 한다는 소리가 “그렇게 많이 아파? 좀 참아봐”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매정할 수 있는지, 결국 8시간 동안 진통을 하고 저는 자연분만을 포기한 채 수술실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제 몸무게가 26kg으로 늘어날 동안 우리 아이는 무려 4.5kg이나 자라있었습니다. 머리도 너무 커서 언뜻 보면, 마치 산적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애가 컸습니다. 참고로 우리 아이는 그 해 그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 제일 큰 아이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저는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 하고 누워있었습니다. 이 남자! 친구를 데려오더니 저를 옆에다 두고 같이 김치보쌈을 시켜 먹었습니다. 배는 고프고 냄새는 기가 막히고 저는 괴로운 마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 앓았습니다. 무심한 우리 남편 “당신도 한 입 먹을래?” 말하는데, 진짜 한대 콱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다음날은 갑자기 통닭이 먹고 싶다면서 그걸 시켜먹는데, 제 맘을 아시고 친정엄마가 먼저 “자네는 시방 야가 이래 눠 있는디, 그 통닭인지 뭐시기가 입에 들거가는 겨? 아 나가서 묵고 오든가 헐 것이제 이게 뭐여∼” 하고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남편은 기가 팍 죽어서 조용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간 김에 아예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았는지 늦게까지 술 마시고, 다 늦은 저녁이나 돼서 들어왔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가 좀 일찍 결혼을 해서, 그 때 저희 남편 나이가 스물 여섯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남편은 참 서운할 정도로 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첫 아이 낳자마자 바로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음해에 또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엔 첫날만 제 옆에 있어주고, 그 다음부터는 병원에 잘 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없는 자유를 만끽하며 친구들 불러 술 마시고, 당구장 가고, 아주 신나게 놀았습니다. 제가 뭐라 했더니 병실이 너무 더워서 도저히 못 있겠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렇게 애들 낳을 때도 자기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기저귀 한번 제대로 갈아준 적도 없던 이 사람이 요즘은 밤마다 셋째 낳자고 저를 들들들 볶아댑니다. 얼마 전 친구네 딸내미 돌잔치에 갔다 오더니, 그 방긋방긋 웃는 게 눈에 밟혀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딸을 낳자고 조릅니다. 그게 제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저 웬수가 달라질 리도 없고 해서, 제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나갔습니다. 요즘은 우리 두 아들을 꼬셔서 “너네 옆집 다영이처럼 예쁜 여동생 있었으면 좋겠지?” 하고 애들까지 들쑤시고 다닙니다. 첫애 낳고 9년이나 흘렀는데, 여전히 철이 없는 우리 남편, 요런 남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희 남편 제발 누구 말려주세요~ 광주 광산|김은주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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