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딸아딸아엄마말좀들으렴

입력 2008-07-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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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방학은 엄마의 개학이라더니, 딸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또다시 저와 딸아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됐습니다. 딸과 엄마 사이는 참으로 미묘합니다. 가까울 때는 서로 간이라도 빼줄듯이 히히덕거리다가 또 싸울 때는 세상에 웬수도 그런 웬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못할 독한소리를 서로에게 퍼붓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천상 엄마인 저는, 전생의 웬수 같은 딸에게 뭐든지 다 주고 싶고, 좋은 것이란 것은 다 경험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딸에게 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나마 윤활유가 될 만한 걸 경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림, 책, 음악, 영화 등 이런 ‘예술’이 그 정답이 아닐까 싶어서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음악회와 화랑에 자주 데리고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 딸, 어쩜 그렇게 부산스러운지, 음악회에 가면 지루하다고 징징대다가 쿨쿨 자기만 합니다. 화랑에 가면 그 많은 그림을 보는데 5분이면 됩니다. 그림은 그냥 대충 보고, 화랑에서 제공하는 사탕은 한 주먹씩 가져옵니다. 정수기의 물도 꼭 세 번씩 빼먹고 그것도 아니면 화랑 안에서 동생하고 싸움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인가 화랑에 계시는 분께 여쭤봤습니다. 우리 애만 이렇게 별나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서 오는 애들은 백이면 백 다들 그림에는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위안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제 욕심에 비하면 우리 딸의 촐싹거림은, 너무나 심했습니다. 그러던 딸이 이제 중학생도 되고 했으니, 적어도 책하고는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는 딸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말에 공부는 안 해도 책은 꼭 한권씩 읽어라!” 그런데, 지난 주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은 명작, ‘제인 에어’를 딸아이에게 사다주면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꺼운 책을 보더니, 입을 삐쭉 내밀던 우리 딸! 한참이 지났는데도 방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고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얘가 웬일로, 독서를 이렇게 오래하는지 신기해서 살짝 문을 열어봤더니, 딸아이가 글쎄… 책을 베개 삼아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래도 그림책은 하나씩 읽었는데, 이젠 머리가 컸으니, 그림책을 쥐어줄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 난, 저 나이 때에 ‘제인 에어’를 읽고 밤을 새우면서 너무너무 감동을 받았었는데…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에휴… 딸아이하고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저를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며느리를 교양 있게 만들고픈 욕심 많은 시어머니고, 제 딸은 그런 시어머니가 야속하다고 느끼는 철부지 며느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냥 두고 볼까 합니다. 자꾸 제가 직접 손에 쥐어 주다보니, 이젠 저도 지쳤습니다. 제가 이렇게 첫째한테 진을 빼고 있는 사이, 신경을 잘 못 써준 둘째 아들 녀석은 야생의 들개처럼 제 멋대로∼ 씩씩하고 밝게 자랐습니다. 첫째도 저렇게 야생의 들개처럼 키웠어야 했나? 뭐가 옳은 건지 참 모르겠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제가 제발, 딸아이가 뭘 하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대구 만촌|권해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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