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엄마이제따뜻한밥드세요

입력 2009-0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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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께서는 시골에서 홀로 농사지으며 살고 계십니다. 가을걷이 끝나고 요즘은 좀 쉬셔도 되는데, 일손 놓고 있는 게 아깝다며 인근 비닐하우스로 일을 다니고 계십니다. 지난 번 남편하고 같이 갔을 때도, 일을 다녀오셨는지 작업복 차림으로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엄마. 오늘도 일 다녀오신 거예요? 날도 추운데 좀 쉬시지 않고, 저녁 준비 내가 할게요. 엄마는 좀 쉬세요” 하면서 부랴부랴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유∼ 다 했어. 너야말로 출근하는 애가 얼마나 힘들겠냐. 저쪽 가서 쉬어라”하며 한사코 말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엄마의 도시락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통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일 다니시면서 가지고 다니시는 도시락 같은데, 보온 도시락이 아닌 그냥 플라스틱 통이었습니다. “엄마 집에 보온 도시락 없어요? 날도 추운데 여태 이 차가운 도시락 통 갖고 다니신 거예요?” 하니까 “아이고∼ 나만 찬밥 먹냐? 나보다 더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아무소리 없이 찬밥 먹고 일한다. 여럿이 먹으면 추운 줄도 모르고, 비닐하우스에 있어서 그렇게 춥지도 않아”하시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가끔 엄마께 전화 드려서 “엄마. 어디 편찮으신데 없죠? 힘들면 일도 쉬었다 하시고 쉬엄쉬엄 다니세요” 하면 “아프긴, 그냥 소화만 좀 안 되지 다 좋다. 일 다니는 것도 재미있고 집에 혼자 있는 건 답답한데, 나가서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돈도 벌고 참 좋다”하셨던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안부를 여쭐 때마다 다 좋은데 소화가 안 된다고 하셨는데, 무심코 넘겼던 그 말씀이 엄마의 플라스틱 도시락과 함께 제 명치에 탁 걸렸습니다. 추운 날씨에 찬밥 드시는데 소화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하우스여서 춥지 않고, 밥도 차지 않다는 건 다 저를 위한 엄마의 변명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엄마를 모시고 시내 시장으로 갔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꼭 좋은 보온 도시락 통을 사드리고 싶어서 문이 열려 있는 가게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딱 한 군데 아직 열려 있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들어가 보온 도시락 통 좀 보여 달라고 했더니, 주인아주머니께서 몇 가지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게 미안하셨는지 괜히 주인에게 “야가 우리 딸인데 내가 일 다닐 때 찬밥 먹는다고 밥 뜨시게 먹으라고 이렇게 야단이네요. 나는 괜찮은데”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가게 아주머니는 “요즘 세상에 누가 찬밥 먹어요. 이렇게 좋은 도시락 통이 많은데, 찬밥 드시면 소화도 안 되시고 밥맛도 없으세요. 이제부터 따님이 사준 보온 도시락으로 맛나게 점심 드시고 일 하세요” 하면서 제가 고른 도시락 통을 계산해주셨습니다. 한사코 사양하시던 우리 엄마는 새 도시락 통 받고 좋아서 입이 싱글벙글 벌어지셨습니다. 그 후로는 엄마는 제가 안부 전화를 드리면 “야∼ 네 덕에 요새는 소화가 절로 된다. 점심때가 됐는데도 밥이 뜨끈뜨끈 허고, 물도 뜨끈뜨끈 허고…일 댕기는 아줌마들이 다들 좋아 보인다고 하나씩 산다고 야단이다. 참 좋은 세상이지. 고맙다. 내가 딸 덕에 호강이다” 하셨습니다. 보온 도시락 하나에 호강을 논하시는 소박한 우리 엄마! 먼저 사드릴 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항상 자식들 바른길로 키워 주시고, 늘 열심히 사시는 우리 엄마! 이제는 따뜻한 진지 드시고, 제발 어디 편찮으시지 말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연세 드실수록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게 참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대전 유성|이현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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