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메마른가슴을적셔준나의벗아

입력 2009-01-15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


제게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결혼 초까지 아주 가깝게 지낸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3∼4년 후, 버스로 2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이사 가는 바람에 자주 만나지 못 하고 전화 통화만 1년에 3∼4번 했습니다. 그렇게 얼굴 못 보고 지낸 지 벌써 10년, 어느새 제 나이도 마흔 둘이 됐습니다. 이제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운치를 느끼기보다, ‘아이고! 사람들이 다 밟아서 청소하기 힘들겠다’라고 생각을 먼저 할 정도로 감성이라곤 바짝 메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도 탈 없이 커가고, 남편과의 생활도 고만고만합니다. 크게 웃을 일도, 울 일도 없이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제 친구가 전화를 했습니다. “너 잘 살고 있니? 어쩜 그렇게 전화 한 통이 없어! 남편이랑 애들도 잘 지내지?” 그 반가운 목소리에 주저리주저리 지난 일들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할말이 너무 많아 차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뜸을 들였습니다. 그 친구가 먼저 물었습니다. “너 내일은 뭐 해? 우리 중간지점에서 잠깐 볼까?” 하는데, 마치 애인에게 데이트 신청 받은 것처럼 제 가슴이 막 뛰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당장 보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친구를 만난다는 게 너무 설레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내 친구,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예전보다 살도 많이 찌고, 얼굴에 주름도 많이 늘었는데… 나 늙었다고 실망하면 어쩌지?’하며 그제서야 무심코 흘려버린 10년이란 세월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자주 좀 볼 것을 왜 이제야 볼 생각을 했는지… 거울을 보니 파마도 다 풀려서 머리모양도 지저분하고, 피부도 꺼칠하고, 눈 밑에 기미까지 있고 뭐 하나 괜찮아 보이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입고 나갈 옷도 마땅치 않고 친구를 보는 건 정말 설6지만 너무 변한 제 모습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날 못 알아보면 어쩌나 그런 걱정까지 들었습니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약속장소인 커피숍으로 갔는데, 제 친구는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습니다. 제 친구를 못 알아 볼까봐 걱정했는데, 얼굴을 보니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뭐야? 하나도 안 변했잖아? 난 너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하니까 친구도 “나도 너 못 알아 볼까봐 커피숍에 못 들어가고 있었어. 앉아 있으면 널 못 찾을 것 같았거든”하는데 제 친구 눈가에 얼핏 눈물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눈물까지 보이는 친구를 보니 저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저는 선물로 준비한 꽃바구니를 친구에게 주고,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친구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중학교 때 생각나니? 서로 헤어져야하는데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우리 집과 너희 집을 몇 번씩 오가며 집에도 못 들어갔잖아”하면서 제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친구가 똑같이 기억하며 얘기했습니다. 내 10대와 20대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고 행복인지 새삼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친구를 둔 사람은 어느 부자도 부럽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내 친구‘고영님’영님이도 저와 같은 생각일까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추운 날씨에 코는 빨개졌지만, 마음만큼은 너무나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경기 고양 | 유선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