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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튼스쿨서박사과정밟아…악바리 10년“나이트한번안갔어요”
중학교 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의 이모 집을 방문했다. 엄마, 아빠가 이왕 온 김에 미국학교 구경이나 하고 가자고 했다. 페이 스쿨의 드넓은 운동장에서 햇살을 받으며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딸은 생각했다.
‘아, 미국 애들은 매일 운동장에서 놀기만 하는구나. 나도 공부 걱정 안 하고 놀면서 학교를 다녔으면 ….’ 한국으로 돌아온 딸은 아빠와 마주 앉았다. 유학을 보내달라고 3개월 간 부모와 막무가내 투쟁을 벌여 온 딸이었다.
아빠는 딸과 아들 앞에서 엄숙히 입을 열었다. “어리지만 나는 너희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단 조건이 있다. 아빠는 외화 낭비하는 꼴은 절대 못 본다. 가면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 반에서 1등! 학교에서 1등! 그리고 고등학교도 대학도 최고로 좋은 곳에 진학해야 한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라면 지금이라도 안 가면 된다.”
딸과 아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결심한 딸이 아빠에게 말했다. “알았어, 아빠. 대신 우리도 조건이 있어. 앞으로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성적표 보여 달라고 하지 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딸은 메사추세츠 페이 스쿨, 세인트 폴 스쿨, 웰슬리대, MIT를 거쳐 지난해 미국 최고의 경영대학원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MIT와 와튼 스쿨이야 재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페이 스쿨은 미국 최고의 전통을 지닌 명문교, 웰슬리대는 힐러리 클린턴이 나온 학교다. 웰슬리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MIT로 옮겨 순수수학을 전공했다. 와튼 스쿨에서는 석사과정을 생략한 채 박사과정에 합격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딸과 아빠는 10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 딸의 이름은 서동주(26). 아빠는 개그맨이자 연예기획자 서세원 씨였다. 엄마는 CF모델과 연기인으로 유명했던 서정희 씨. 남동생은 가수 미로이다.
서동주 씨는 자신의 유학생활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묶어 지난해 ‘동주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책 속에는 20대 여성 특유의 감성어린 글과 본인이 직접 찍고 그린 사진, 그림들이 담겨 있다.
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귀국한 서동주 씨를 만났다.
근황을 물으니 첫 마디가 “휴학계를 내려고요”해서 놀랐다.
“여러 이유가 있어요. 공부에 조금은 지친 점도 있고요. 하고 싶었던 사진도 해보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사회생활 경험을 쌓아보려고 해요.”
기업에서 컨설팅 일을 해보고 싶단다. 사실 대학원에 가기 전 미국에서 금융 관련 회사에 원서를 냈다가 와튼 스쿨에 합격하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돌아와 한국기업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 ‘공부 잘 하는 비법’에 대한 컨설팅을 더 잘 할 것 같은데요?
“하하!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보세요. 사실 공부 잘 하는 비법이 어디 있겠어요? 오직 단순무식하게 하는 거죠.”
-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 같은데요?
“음 … 목표를 크게 잡는 게 중요해요. ‘나는 이런 대학 가야지’, ‘이 대학원 가야지’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거죠. 목표가 커야 중도에 실패해도 또 도전할 힘이 생기거든요.”
- MIT에서 수학을 전공했지요. 수학 잘 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수학문제를 봤다? 모르는 게 있다? 한 10분 보다가 모르면 넘어가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비슷한 문제유형을 찾아본다든가 하면서 1시간이건 2시간이건 붙들고 늘어져요. 답을 보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죠. 수학은 한 시간 동안 100문제를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시간에 한 문제를 풀더라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해요.”
서동주 씨는 미국에서도 발로 뛰는 한국식 공부법이 통했다고 했다. 혼자서 해결이 안 되면 거침없이 교수실 방문을 두드렸다.
- 두드렸더니 열렸군요?
“참 많이 찾아 갔어요. 교수님한테 여쭤봐서 이해를 했는데 집에 오면 또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창피를 무릅쓰고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찾아가는 거죠. 한국사람 특유의 끈기! 물건 하나를 팔 때 거절당했다고 금방 물러서지 않잖아요? 거절당하면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그러다 마음의 문이 열리고, 결국 ‘얘기라도 들어 봅시다’하게 되는 거죠.”
- 유학생활에 대해 ‘낭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만?
“예전에 어떤 분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자식이 전교에서 100명 중 95등을 하는 수준인데, 외국으로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거였죠. 글쎄요, 아마도 스스로 새로운 목표가 생기거나 의지가 없다면 그 아이는 어딜 가도 95등이 아닐까 싶어요. 영어만 해도 그렇죠. 한국에 있었을 때 영어 공부가 잘 안 됐다면, 가서도 생각보다는 잘 안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본인의 유학생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죠?
“학비만큼은 스스로 벌려고 했죠. 남들 하는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어요. 학교식당에서 일 하고 과외도 하고. 나중에 경험이 좀 쌓이고 나서는 교수님 밑에서 인턴을 했어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는 밥 사 먹을 돈까지 떨어졌을 때도 있었죠. 3개월 동안 두유와 오트밀만 먹고 산 적도 있었어요.”
- 예원중학교 때는 피아노, 웰슬리에서는 미술, MIT에서 수학을 했다가 지금은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죠? 무슨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
“사실 제 성격이 변덕이 심해요. 아빠랑 비슷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