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쇼’실패아닌실패…대안은호스티스

입력 2009-03-29 08: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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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KBS 2TV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이하 ‘박중훈쇼’)이 방영 4개월 만에 폐지된다. 프로그램 포맷에 변화를 주려는 KBS 측 제안을 박중훈이 고사했기 때문이다. KBS 측은 현재의 박중훈 단독 MC 체제에서 다중 MC 체제로 포맷을 변경하려 했다. 5~10%대에 머무는 시청률이 문제가 됐다. 각종 미디어에서도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을 수없이 쏟아냈다. 결국 변화를 거부한 탓으로 ‘박중훈쇼’는 4월19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각종 미디어에서 지적한 ‘박중훈쇼’의 실패요인은 크게 몇 가지로 압축된다. 일단, 박중훈의 호스트로서의 역량 문제다. 흥미가 계속 유지되도록 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볍고 유연한 태도로 게스트 발언을 유도해야 하는데, 자신이 게스트인양 무게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의 강호동과 자주 비교됐다. 알아서 먼저 망가지고, 시끌벅적하게 분위기를 유도하는 강호동이 ‘이상적인 토크쇼 호스트’로 지목됐다.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무릎팍도사’가 ‘정답’만 말하는 딱딱한 분위기의 ‘박중훈쇼’보다 엔터테인먼트로서 더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쇼도 재밌고, 시청률도 잘 나오며, 개인 인맥만으로 게스트를 끌어오는 박중훈과 달리, 연예인 본인이 ‘무릎팍도사’ 효과를 인지해 자진 출연하는 이상적인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외 KBS 시사교양팀이 만들어 ‘버라이어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심도 있는 시사토크도 아닌 것이’라는 어정쩡한 분위기가 비판되기도 했다. 애초 콘셉트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들은 대부분 맞는 이야기다. 특히 토크쇼의 ‘핵’이 되는 박중훈의 호스트 자질 문제에 있어서는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대에 역행했다’는 지적만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트렌드가 ‘단독MC에서 다중MC로’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다중MC 체제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다. 8명, 9명씩 호스트, 패널이 등장하고, 게스트 2,3명이 더 추가돼 시끌벅적하게 놀다 가는 것은 트렌드의 말기현상이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시청피로도가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른다. 열 몇 명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며 과속형 수다를 떠는 구조는, 스피드감은 살리지만 그 외에는 모두 죽인다. 뭘 봤는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음날 중계기사로 다시 봐야만 알 수 있을 정도다. 모든 종류의 문화현상은 하나의 흐름이 동의를 얻어 계속 그 방향으로 치닫다가, 극단에 이르러 퇴폐화되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록, 힙합, 테크노 등 모든 장르가 혼합돼 극단까지 이른 하이브리드 록 뒤에는 도로 담백한 형태의 포크가 주목을 받는다. 온갖 특수효과 기술과 각종 장르가 혼성된 블록버스터 관람 뒤에는 청정 휴먼 드라마를 찾게 된다. 초다중 MC체제의 신경증적인 스피드 수다 이후는 다시 호스트와 게스트 간 여유로운 대화가 오가는 정통 토크쇼가 돌아오게 돼있다. 그런 식으로 볼 때는 ‘박중훈쇼’도 틀린 기획은 아니었다. 분명히 지금쯤 시도됐어야 할 기획이다. 다만 그 세부적 구성과 마케팅에서 밀렸을 뿐이다. 여기서 현 시점 ‘성공적인 단독MC 토크쇼’의 요건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이 호스트 선정이다. 늘 까다로운 문제다. 설명하자면, 게스트를 돋보이게 하는 존재여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스타성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스타지만 스타가 아니며, 사회자지만 사회자 이상의 존재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얼핏 얼토당토 않은 이상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미 성공 사례가 있다. ‘자니윤 쇼’로 시작된 토크쇼 장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주병진이다. ‘주병진 쇼’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호스트 역할을 보여줘 화제를 모았다. 게스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던 기존 패턴에서 벗어나, 게스트에 공격적이고 조롱조의 태도를 보여줬다. 이렇게 되면 두 마리 토끼가 확보된다. 날카롭고 신랄한 코멘트로 게스트를 공격함으로써 호스트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동시에 괴롭힘 당하는 게스트 역시 시청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끌어내 캐릭터 부각이 잘 이뤄진다. 이는 해외 토크의 ‘핵심’을 정확히 집어낸 형식이었다. 미국 토크쇼는 물론이고, 일본 만담 콤비의 보케-츠코미 구조와도 맞아 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시청자의 가학-피학적 쾌락의 동?쳉薩?욕구를 정확히 채워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패턴은 현 시점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다. 집단 버라이어티 쇼가 이런 패턴을 이어받아 무한증식시켰기 때문이다. 같은 패턴으로 새 토크쇼를 만들어봤자 기존 버리어티와 차별성도 없고, 미래 비전 면에서도 승산이 없다. 이미 단물이 빠질 정도로 써먹은 패턴이라 시청자도 지루해하고 있다. 더군다나 무한증식 과정에서 독설, 호통의 질적 저하까지 이뤄져 대중 이미지도 좋지 않다. ‘거성쇼’ 반응이 좋지 않은 것도 그 탓이다. ‘김구라쇼’가 나온다 해도 마찬가지가 된다. 넓게 보면 ‘박중훈 쇼’ 역시 이런 속성을 파악하고 그에 비껴 나가려다 ‘지극히 비상업적 노선’으 로 빠져 실패한 경우가 된다. 결국 현 시점 ‘단독 토크쇼의 조건’은 더더욱 까다로워지게 된다. 자체적으로 상업적 가능성을 보전하면서도, 기존 버라이어티와의 차별화도 이뤄야 한다. 바늘구멍 같은 이야기지만, 이 역시도 이미 성공 사례가 나와 있다. 여성 MC 단독 토크쇼다. 여성 MC 토크쇼는 사실상 ‘언제나’ 먹혀왔다.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 플러스 유’ 등의 성공사례가 있다. 여성 토크쇼 강점은 ‘스타급 게스트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게스트가 신통치 않아도 MC 본인의 스타성으로 시선을 잡아끌게 된다. 여성 스타만이 지닌 어드밴티지다. 또한 굳이 게스트에게서 ‘폭탄 발언’을 이끌어내야 할 필요도 없다. MC 의상과 헤어스타일 변화만으로도 화젯거리가 된다. 이 같은 호스트의 ‘원천적 존재감’을 바탕으로, 무리 없이 진행만 하면 시청 흥미도는 고르게 유지된다. 또한 ‘현 시점이야말로’ 토크쇼는 여성 MC를 주축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여성 MC라 해서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던 건 아니다. 이승연은 커피숍에서 수다 떨듯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김혜수는 경직된 분위기에 또렷한 태도로 진지한 대화를 이끌어냈다. 팔린 것은 결국 호스트 개성이 아니라, ‘여성성’이고, ‘여성적 안정감’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지금 정확한 차별성을 제시할 수 있다. 기존 집단 버라이어티의 치고받고 찌르고 빠지는 공격적 콘셉트는 다분히 남성적인 콘셉트다. 이에 대한 염증은 당연히 그 반대편인 ‘여성’의 입장에서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 정통 토크쇼의 새로운 위치설정이 된다. 이외에도 ‘성공적인 단독MC 토크쇼’의 요건은 많다. ‘박중훈 쇼’처럼 무리하게 정치·사회적으로 영역을 넓혀선 안 된다는 점도 있다. 해외 토크쇼도 기본 게스트는 연예인 중심이다. 정치인이나 사회 인사들은 전직 대통령이나 대도시 시장 같은 ‘연예인에 준하는 대중관심도를 지닌 슈퍼스타급 인사’들만 섭외한다. 토크쇼는 기본이 ‘쇼’다. 그에 준해야 한다. 무조건 단독 MC로만 밀고 나가는 것도 무리가 있다. 미국도 음악밴드 리더가 패널 역할을 한다. 대화만 하지 말고 음악 게스트 공연으로 유연한 ‘쇼’ 분위기를 내줄 필요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토크쇼’는 죽은 게 아니다. 돌려놓으려는 첫 시도가 계산 착오로 실패한 것뿐이다. ‘박중훈 쇼’ 탓에 토크쇼 복귀가 전면 차단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결국 문화산업은 ‘문화흐름’에 의존하며, 그 ‘흐름’을 오독하면 그 자체로 시장붕괴의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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