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자식? 나쁜 자석! 오해마세요

입력 2009-09-1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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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공연에 들어간 연극 ‘나쁜자석’ 의 두 주인공인 정동화(왼쪽)와 이율.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연극 ‘나쁜자석’ 꽃남 2인방…뮤지컬 출신 스물다섯 동갑 절친
연극 ‘나쁜자석’이 앙코르 공연에 돌입한 지도 한 달이 넘어섰다. 일단 웃기고 보자는 코믹물이 판을 치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나쁜자석’은 바둑통 백돌 속의 검은 알처럼 눈에 띈다. ‘어른들을 위한 감성판타지 동화’를내세운 ‘나쁜자석’은 2005년 초연 이후 매년 관객들의 재공연 요청을 받아 온 행복한 작품이다.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플래시백 기법과 액자식 구성은 소극장 무대에서 연극 보는 맛을 제대로 내준다.‘나쁜자석’의 중심에는 네 명의 남자가 서 있다. 아홉과 열아홉, 그리고 스물아홉의 이야기가 친구사이인 이들을 중심으로 얽힌다. 이 중 두 사람을 만났다. 연극무대에 첫 도전장을 내민 이율(25), 감성적 보이스로 정평이 난정동화(25)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무대 밖에서도 실제로 친구사이다.

‘나쁜자석’을 ‘나쁜자식’의 사투리쯤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여기서 ‘자석’은 진짜 ‘자석’이다. N극과 S극이 있는 자석. 좋은 자석이 되고 싶지만, 그래서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결국 나쁜 자석이 되어버린 한 친구를 둘러싼 우정과 증오가 작품을 끌어가는 양 축이다. 아니, 양극이다.

“(정동화)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작품이죠. 성인이 되어 버린 세 친구(한 명은 극중에서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가 아홉 살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가시면서 ‘잃어버렸던 순수를 찾은 것같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두 사람은 모두 뮤지컬배우 출신이다. 뮤지컬과 연극은 닮은 듯 다르다. 연극을 하다 뮤지컬로 전향하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그 반대는 드물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율)꿈이 그냥 배우였지 딱히 뮤지컬 배우는 아니었거든요. 작품을 보고 결정을 할 뿐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은 해 왔어요. 뮤지컬과 연극을 거의 같게 봐요. 사실 다를 게 없죠.”

“(정동화)뮤지컬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노래로 처리하죠. 그런데 사람이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지, 노래를 부르진 않잖아요? 배우로서 솔직한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는 면에서는 연극이 좀 더 희열이 있는 것 같아요.”

‘나쁜자석’은 아홉 살과 열아홉, 스물아홉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아홉’일까?

“(정동화)뭔가 미완성의 미학을 표현하려 했던 게 아닐까요? 딱 떨어지지 않고 하나가 부족한. 결함이 있는 이들의 자아를 숫자로 드러낸 거라고 봅니다.”

극중 인물인 민호(정동화), 은철, 봉구, 원석(이율)는 제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정동화)은철이란 인물이 가장 현실적이죠. 악역같다고도 하시는데 사실 현대인의 자화상을 표현한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 제 역인 민호와 실제로도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생각이 너무 많죠. 해답을 못 찾고 헤매는 것도 비슷하고. 혼란스러운 20대를 보내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죠. 대본을 읽다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억지스런 부분도 많아요. 앞뒤가 안 맞는 구석도 있고. 하여튼 어려워요.”

“(이율)딱 너 맞네, 흐흐.”

앙코르 ‘나쁜자석’은 전작과 상당 부분 달라졌다. 전작에서는 최주봉, 박근형의 아들들인 최규환, 박상훈이 출연해 화제가 됐었다. 이번엔 배우도 연출자도 모두 바뀌었다.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이율)원래 2시간짜리 공연인데 1시간 30분으로 줄였어요. 전개가 빠르고 깔끔해졌죠. 가장 크게는 마지막 장면이 수정됐습니다. 보신 분들은 앙코르 버전이 더 좋다고 하시던데요. 하하!”

“(정동화)전작의 성공이 부담되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선배님들이 워낙 잘 하셔서. 저희가 메시지를 담백하고 깔끔하게 전한다면, 전작은 캐릭터 표현이라든지 관계 면에서 좀 더 와 닿는 느낌이었죠.”

앙코르 ‘나쁜자석’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한결같이 꽃 같은 외모를 지녔다. 연극계의 F4다. 극중 여자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의 대부분이 여성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정동화)요즘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70 -80%가 여성관객이죠. 남자들은 대부분 여성에게 잡혀 온 경우가 아닐까요? 하하! 카메오로 여성 한 분이 참여하긴 합니다.”

‘나쁜자석’은 마지막 엔딩 장면이 압권이다. 꽃비가 내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숨이 멎는다. 감동의 90%는 꽃비를 타고 밀려든다.

“(정동화)어렸을 때 원석이가 하늘정원이란 동화를 들려줍니다. 그 마지막 장면을 봉구가 실제로 만들어버린 거죠. 동화가 눈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친구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순간 꽃비가 터진다는 거예요. 거기서 감동이 오죠.”

이제 스물다섯. 꿈도 많고 계획도 많은 나이다. 이들은 어떤 배우로 성장하게 될까?

“(이율)대중적인 배우? 대중과 호흡을 잘 맞추는 배우가 좋은 배우 아닐까요? 제 롤 모델은 안성기 선생님이세요.”

“(정동화)항상 궁금해지는 배우. 연기뿐만 아니라 삶도 궁금한 배우.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 개인적으로 이병헌씨가 늘 궁금합니다. 흐흐”

지난 달 7일에 앙코르 공연의 스타트를 끊은 ‘나쁜자석’은 9월말까지 주욱 달린다. 가을의 문턱. 간만에 소극장을 찾는 일도 보람있겠다. 꽃비를 맞으러 가자.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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