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씨네에세이] 교차상영 희생양 ‘집행자’ 볼권리 뺏은 진짜 루저는?

입력 2009-11-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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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행자’ 포스터.

영화 ‘집행자’ 포스터.

이 글을 쓰는 기자의 키는 몇 센티미터일까요. 그저 ‘작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쟤는 키만 작아”와 “쟤는 키도 작아”란 말의 차이가 뭘까요. 전자는 다른 면은 모두 봐줄 만한데 키만 작다는 것이고, 후자는 다른 면도 별 볼 일 없는데 키까지 작다는 뉘앙스를 준다면 과장일까요.

최근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잘생기고 예쁜 이성’에 대한 욕망을 당신은 정녕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여대생에게 더 이상 돌을 던지지 맙시다.

다만, 이 개인적인 욕망을 거르지 않은 채 그대로 방송한 제작진의 책임은 무겁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발언을 거르지 않은 채 그대로 방송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 논란은 방송의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큰지 일깨운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영화는 당대의 문화적 감수성과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드러내지요.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서 당대 관객의 정서와 문화적 감수성에 영향력을 미치곤 합니다.

적지 않은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영화는 관객의 관람료를 통해 그 수익을 창출해내는 매체입니다. 관객이 찾지 않는 영화의 흥행은 있을 수 없고 해당 영화의 투자자나 제작자가 감당해야 할 손실은 엄청납니다.

이 영화를 관람하는 곳이 극장입니다. 요즘 많은 극장들은 최소 2개에서 10개가 넘는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입니다.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지만 정작 극장에서 모든 개봉작을 만날 수는 없지요. 극장은 흥행 가능성과 문화적 책임 등을 기준으로 적절한 안배로써 상영작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안배’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흥행 가능성이 짙은 화제작을 개봉할 때, 특히 이들 영화를 배급하는 거대 배급사들의 힘이 작용할 때입니다. 배급사는 라인업(향후 개봉작)을 조건으로 상영작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곤 합니다. 수익을 노리는 극장들의 욕구도 빼놓을 수 없지요.

요즘 배급사들은 상영시간이 긴 화제작은 상영관 확보보다 1개관에서 몇 번을 상영할 수 있느냐는 회차 확보에 주력한다는군요. 극장에서는 상영회차가 정해져 있는 것이니 상영관을 더 내줘야 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겠지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차상영의 문제도 여기서 발생합니다.

영화 ‘집행자’가 그 선택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행자’는 20억원이 채 들지 않는 제작비로 5일 247개관에서 개봉해 첫 주 2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개봉 2주차에 교차상영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만큼 영화를 선보일 상영관을 잃고 만 것이니 관객의 발길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더 중요한 문제는 관객들의 보이지 않은 피해일 겁니다.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것이니까요.

자, ‘집행자’는 ‘키만 작은’ 영화일까요, ‘키도 작은’ 영화일까요. ‘집행자’ 논란의 진짜 ‘루저’는 누구일까요.<엔터테인먼트부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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