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흔하게 들었던 공주님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좋은 아줌마 만나 인생 핀 ‘신데렐라’, 하지 말라는 짓 하다가 잠든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세상 물정 모르는 ‘백설공주’까지… 참 팔자 좋은 여성들이다.
이러한 생각을 알았던 걸까, 이 중 한 공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철이 들기 시작했다.
1812년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 탄생 200주년을 맞아 재탄생된 영화 ‘백설공주’(원제: Mirror, mirror)의 첫 시작은 200년 전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왕국에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새 왕비(줄리아 로버츠 분)가 들어온다. 하지만 왕비를 맞이하고 얼마 뒤, 갑자기 왕(숀 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후, 왕비는 왕국을 직접 지배하고 눈엣가시인 아름다운 의붓딸 백설공주도 10년이 넘도록 궁에 가둬놓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왕비의 사치벽이 심해 왕국이 파산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된 백설공주는 왕비 몰래 밖으로 나가 일곱 난쟁이와 힘을 합쳐 빼앗긴 왕국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한다.
▶ 백설공주, 현실에 눈뜨고 왕비의 ‘강적’ 됐다
기존 백설공주는 단지 왕비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왕비의 시기를 받았지만, 이번 백설공주는 몇 가지가 더 추가됐다.
바로 백설공주가 왕궁을 나가 백성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바로 보게 됐다는 점이다. 또한 왕비가 왕실의 파산을 막기 위해 결혼하려는 발렌시아의 앤드류 왕자와 삼각관계도 덧붙여졌다.
그 동안 백설공주는 일곱 난장이집에서 백마 탄 왕자님이 언젠간 나타난다는 생각에 빠져 살지만, ‘저돌적인’ 현대판 백설공주는 계모가 망친 자신의 나라를 직접 보고 공주의 자리와 위엄을 지키려 노력한다.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일곱 난쟁이에게 검술과 싸움을 배우는 장면은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백설공주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실제로 릴리 콜린스는 이 장면을 위해 체력 훈련을 물론 검술, 펜싱, 레슬링, 곡예까지 소화했다.
왕비는 이제 외모 순위뿐 만이 아니라 왕비 자리도 위태위태하다. 또한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왕자까지 백설공주에게 빠졌으니 진퇴양난의 길을 걷고 있는 것. 성숙해진 백설공주의 모습과 한층 세어진 왕비의 복수도 눈여겨 볼만하다.
▶ 밉지 않은 왕비, ‘허당’에 센스없는 왕자님…2% 부족한 반전 캐릭터
그렇다고 왕비는 마냥 무섭지만은 않다. 전직 ‘귀여운 여인’ 줄리아 로버츠는 영화 속에서 ‘푼수의 끝’을 보여준다.
어쩌면 철이 없는 쪽은 계모이다.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시녀들 앞에서 옷을 벗고 새 똥으로 얼굴 마사지를 하고 벌침으로 입술 보톡스, 전갈 독으로 전신 마사지를 받는 등 모습을 보여준다. 다소 철딱서니 없지만 현대 여성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 지 공감을 사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동화 속 왕자님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를 내려놓길. 첫 등장부터 난쟁이 도둑들에게 강탈당하고, 주술에 걸리기까지 그야말로 ‘허당’이다. 게다가 왕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도 눈치를 못 채고 “백설공주가 가장 예쁘다”고 하는 센스 없는 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에겐 헌신적인 이 왕자의 은근한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결론은 뻔한 백설공주의 성장기이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과 독사과의 임팩트가 있다.
이 외에도 한층 화려해진 백설공주를 만든 타셈 싱 감독과 세계 최고의 비주얼 아티스트인 에이코 이사오카가 독특한 색감과 아트감각으로 손수 만든 300여 벌의 의상과 안무가 폴 베커의 연출로 환상적인 무도회 장면을 만들어냈다. 또한 세트장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궁을 세트로 제작해 관객들이 더 쉽게 영화에 아름다운 판타지 세계로 빠질 수 있게 했다. 5월 3일 개봉.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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