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시간 가요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거장들이 전국을 돌며 팬들과 감격적인 재회에 나선다. 사진은 데뷔 55주년 기념 콘서트를 진행 중인 이미자와 ‘영원한 오빠’ 남진, 조영남.(왼쪽부터) 사진|하늘소리·동아닷컴DB·스포츠동아DB
‘거장’이란 어느 일정 분야에서 특히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특히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직도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한 치의 나태함도 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대중의 존경심을 자아낸다. 거장의 존재는 그래서 아름답다. 여전한 열정으로 ‘거장의 품격’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존재들을 만났다.
남진 데뷔 50주년 새 앨범 ‘파트너’ 내놔
김흥국과 브라질 월드컵 응원가 제작도
73세 이미자 55주년 기념 전국투어 계획
칠순의 조영남은 26년만에 자작곡 발표
가수들은 말한다.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싶다”고.
하지만 세월을 이길 순 없다. 언젠가 세월의 벽 앞에서 육체의 한계를 느끼는 게 사람이다. 그래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늦은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격려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를 ‘숫자’로만 보이게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끝내 세월을 이길 순 없겠지만, 열정 만큼은 여전히 푸르다.
이미자(73)와 조영남(69), 남진(68)이 그 주인공이다.
남진은 데뷔 50주년을 맞아 최근 새 앨범 ‘파트너’를 냈다. 얼마 전엔 김흥국과 함께 브라질 월드컵 응원가 ‘쌈바 월드컵’ 녹음도 마쳤다. 10월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대규모 공연도 벌인다. 새 앨범 ‘파트너’엔 경쾌한 리듬의 동명 타이틀곡을 비롯해 5곡이 수록됐다. ‘빈잔’이 연상되는 애절한 분위기의 ‘상사화’, 라틴 삼바리듬의 ‘신기루 사랑’, 정통 트로트 ‘겁이 나’ 등 모두 다른 장르다. 1964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남진은 데뷔 45주년을 기점으로 이번 50주년 앨범까지 모두 네 장의 앨범을 냈다. 1년 3개월에 한 장씩 낸 셈이다.
50주년에도 신곡을 내고 공연하는 남진은 진정한 ‘현역’의 이름이다. 남진은 “늘 더 잘 하고 싶고, 새롭게 해보고 싶다. 새로운 출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남은 가수 인생이 얼마일지 모르겠지만 늘 황금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영남은 얼마 전 특별한 칠순잔치를 벌였다. 1988년 ‘화개장터’ 이후 자작곡이 없었던 그는 4월9일 잔치를 열어 26년 만에 쓴 자작곡 ‘대자보’와 ‘쭉∼서울’ 두 곡을 선보였다. 전날엔 이미 두 곡을 ‘조영남 십년만의 새 노래’란 싱글에 담아 발표했다. 한동안 화가와 작가로 살아오다 자작곡을 통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음악 이야기를 꺼냈다.
조영남은 “내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아닌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만큼 노래를 만드는 일이 힘들긴 했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그의 열정은 숨길 수 없었다. 1960년대 서울 명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노래하다 스타가 된 후 1969년 번안곡 ‘딜라일라’로 데뷔한 조영남은 ‘아버지의 노래’란 제목으로 5월8일부터 경기 일산과 성남, 대구 등에서 공연한다. 지난 46년을 돌아보며 아직 못다 부른 아버지를 노래할 예정이다.
이미자는 데뷔 55주년을 기념하는 전국투어 ‘이미자 노래인생 55년’을 진행 중이다. 10∼12일 서울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20일부터 약 20개 도시를 순회하는 지방투어에 나선다. 73세에 20개 도시 투어를 벌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미자란 가수의 무게를 말해준다. 자기관리가 철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1964년 ‘동백 아가씨’를 기점으로 히트곡을 쏟아낸 이미자는 나라 잃은 세대에게,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위로와 향수의 이름이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젊은 장병들은 네 번이나 자신들을 찾은 이미자의 무대로 위무를 얻었다.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독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들은 이미자의 노래로 반백년 동안 가슴에 묻힌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ziod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