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로 창작의 고통을 산고(産苦), 출산의 고통에 비유한다. 또 다르게는 뼈를 깎는 고통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만큼 쉽게 상상하기 힘든 극도의 스트레스와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 창작이라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려 9년 만에 새 앨범 ‘Avec Piano’를 들고 돌아온 정재형이 느낀 창작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를 조금이나마 어림짐작 해 본다. 2010년 발매된 피아노 연주곡 앨범 ‘Le Petit Piano’ 이후 또 한 장의 연주곡 앨범을 완성한 그는 전보다 더 다양한 연주자들과 협업하며 확실히 발전된 모습을 앨범에 녹여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온전히 앨범 작업에 할애된 건 아니지만 늘 제 옆에 있었던 건 맞아요. 2010년 당시에 앨범을 내면서 연주곡 3부작으로 시리즈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이 앨범에도 실린 ‘안단테’라는 곡을 만든 후에 이런 식의 앨범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니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후 정재형은 한참을 헤매고 길을 잃어가며 이번 앨범의 ‘해답’에 도달했다. 9년 만에 나온 ‘Avec Piano’는 악기로 표현된 대자연의 풍광, 그걸 보고 느낀 그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에 그는 이번 앨범에 대해 “내게 애증이 섞인 앨범이 될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선뜻 곡 작업이 쉽게 되지 않아서 방송 활동을 최대한 줄였어요. 3주 정도의 작업 여행을 떠나 어느 정도의 밑그림을 그렸죠. 이 앨범이 나온 지금 행복함과 뿌듯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애증의 앨범이기도 해요.
정재형은 이번 앨범을 위해 일본 가마쿠라 여행을 떠났다. 깊은 산 꼭대기의 숙소에 그는 자신을 가뒀고 밤에 들려오는 파도소리, 바람소리,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그는 자연은 테마로 잡고 8곡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불빛도 없고 다른 시설도 없는 그런 곳에 혼자 있으니까 무서웠죠. 그러다가 이틀이 지나니까 주변의 다른 소리들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소리에 먼저 동화되고 나중에는 위안을 받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들이에요.”
정재형은 그동안 몇몇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과 친밀도를 빠르게 높여왔다. ‘무한도전’과 ‘불후의 명곡’ 등을 통해 그는 대중과 한층 가까워졌다. 하지만 ‘음악인’ 정재형은 조금 다르다. 그는 음악을 위해 자신을 고립시킬만큼 혼자인 것이 편한 위인이다.
“그냥 혼자인 것이 작업하기는 편한 것 맞아요. 영감(靈感)을 받기 위해서라기 보단 혼자 상상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솔직히 이제 저는 영감을 받아 곡을 쓰는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어떤 곳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시간을 가지고 의자에 엉덩이를 오래 붙이는 것이 먼저죠. 어느 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해요.”
그의 겉모습만 보고 정재형을 자유인 혹은 천재로 생각한 이들에게 다소 충격적일만한 자기 고백이다. 이 때 정재형은 다시 한 번 신선한 고백을 했다. 꽤 고집스러운 마이 웨이(my way) 스타일일 것 같은 그의 입에서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
“저 그렇게 자유롭게 살지 않아요.(웃음) 음악적으로도 가요 하나만 하지 않고 재즈나 다른 장르의 음악에 도전도 해보고 저답지 않은 밝은 톤의 음악도 해본 정도죠. 저도 제 음악이 대중적으로 잘 팔렸으면 좋겠어요. 음악에 대한 책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어 정재형은 그가 생각하는 음악적 책임감을 설파했다. 우리가 아는 ‘음악요정’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그지만 정재형의 음악은 그렇게 동화 속 요정처럼 손에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지 않았다.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은 ‘팔리는 음악’이에요. 대중적으로 봐도 전 대중 음악가니까요. 비록 이번 앨범에서의 접근 방법이 생소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그 부분만 지나면 충분히 대중적인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제겐 요즘 아이돌 음악이 더 어렵더라고요. 4분이라는 시간 안에 이렇게 다양한 작법이 나올 수 있구나. 그리고 대중은 이걸 받아들인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덕분에 저도 자신감을 얻고 이 앨범을 낼 수 있었어요.”
사진=안테나 뮤직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