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공연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남자들의 이야기로 주를 이뤘던 대학로가 여성서사로도 시선을 돌리고 있기 때문. 그 중심에 서 있는 배우 중 한 명은 김소향이다. ‘스모크’, ‘마리 퀴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등을 통해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준 그는 ‘엑스칼리버’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그가 연기하고 있는 ‘기네비어’는 수동적이지 않다.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마을 여성들에게 방어기술을 알려주고 “여성은 약한 존재”라고 말한 ‘랜슬럿’과 첫 만남에서 육척봉으로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슬픔에 흔들리고 있는 반려자 ‘아더’의 곁에서 위로와 힘을 주는 외유내강의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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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과 오디션도 참여했던 김소향은 “기네비어 설정이 전사와 같은 느낌이어서 욕심이 났다. ‘스모크’, ‘마리 퀴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등을 하면서 ‘톰보이’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 나이에 상관없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아마 기존 우리가 알고 있던 ‘기네비어’ 역이 필요했다면 제가 뽑히지 않았을 거예요. 더 잘 하실 분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엑스칼리버’의 기네비어는 용감하고 자주적인 인물이에요. 운명을 믿는 아더와는 반대로 인생의 길은 자신이 개척해나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죠. 기네비어의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나는 가사가 많아요. 많은 분들이 듣고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전작인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마리 퀴리’ 등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상을 진정성 있게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특히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를 할 때는 자신을 생각하며 썼다는 절친 추정화 연출의 제안도 거절할 수 없는데다 시대적인 제약은 있으나 자신이 꿈꾸던 여성상을 자유롭게 그려낼 수 있어 좋았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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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인식이 깨어난 분들이 많아지시는 것 같아 좋아요. ‘마리 퀴리’를 할 때는 타이틀롤이라서 관객들의 반응이 더 크게 와 닿았어요. 주체적인 여성 역할에 응원해주는 관객들의 모습에 더 책임감을 갖고 연기하려고 노력했죠.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언제나 사람을 관찰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생각을 열고 관심을 가지니 더 풍성한 연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김소향은 성별이 아닌 인종의 제약을 넘어선 배우로도 유명하다. 그는 2017년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 동양인 최초로 캐스팅이 됐다. 여전히 캐스팅에 있어서 인종에 대해 ‘유리천장’이 있는 브로드웨이에서 그가 주연인 ‘메리 로버트’ 역을 따냈다. 처음부터 미국 진출을 목표로 삼진 않았다. 대학 과정 중 실제 오디션을 봐야 하는 커리큘럼이 있었고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록 오브 에이지’ 오디션을 봤는데 최종면접까지 가게 된 것. 그럼에도 김소향이 역할을 따내지 못한 것은 ‘언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브로드웨이 앙상블은 주연의 역할도 커버가 될 정도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하거든요. 최종면접에서 캐스팅 디렉터가 따로 불렀는데 영어를 지금보다 못해서 제대로 답을 못했어요. 나중에 떨어진 이유를 들으니 ‘널 뽑고 싶었는데 영어가 부족해서 뽑지 못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학교 졸업을 했지만 너무 아쉽더라고요. 한국에 돌아갈지, 남아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3년을 더 있었어요. 정말 하나씩 이뤄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해외 진출도 다시 할 생각이란다. 그는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50~100번의 오디션을 본다고 해도 좋다. 오디션에 탈락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더 낫다”라며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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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엑스칼리버’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약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작품이다. 높이 12미터에 달하는 무대 위에서 물이 비처럼 쏟아지고 엑스칼리버가 꽂힌 바위산의 높이는 2.5미터. 전투 장면에서는 72명의 조·주연과 앙상블이 한 무대에 들어간다. 김소향은 “제작사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하더라. 영상, 음향, 세트 등 ‘이걸 진짜 무대에서 볼 수 있어?’라고 할 정도였다”라며 “전쟁 장면에 이 정도로 많은 배우들이 들어간 적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을 공연 같아요. ‘엑스칼리버’를 보고 예전에 브로드웨이에서 봤던 ‘라이온 킹’이 떠올랐어요. 돈 없는 유학생인지라 200달러가 큰돈이었거든요. 눈물이 날 지경으로 공연장을 들어갔는데 오프닝부터 동물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죽기 전에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엑스칼리버’도 그런 공연이 됐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