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고 하기에는 안정적이다. 오히려 뒤늦게 찾은 재능일지 모른다. JTBC 금토드라마 ‘언더커버’(연출 송현욱, 극본 송자훈 백철현)를 통해 정극 연기에 처음 도전한 배우 박경리 이야기다.
박경리는 극 중 1990년대 안기부 언더커버 요원인 고윤주 캐릭터를 분했다. 고윤주는 작전 중 마약에 중독돼 조직에서 폐기된 뒤 음지를 전전하며 피폐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배우 한고은과 2인 1역을 연기한 박경리에게는 쉽지 않았을 도전이다.
“그룹(가수) 활동 때와 많이 달랐어요. 무대 위에서 3분이라는 시간을 채워 나가는 이전과 달리 한 인물로 동화돼 그 감정을 오롯이 표출하고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처음이니까요.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긴장을 많이 했어요. 한고은 선배님과 만남은 첫 대본리딩 때 처음이에요. 그때 선배님 연기 톤을 보고 제가 연기해야 할 부분을 공부했던 것 같아요. 선배님도 자신의 차분함을 잘 녹이면 많이 비슷하지 않겠냐고 하세요. 친절하게 설명해주셨고, 저도 그 조언대로 연기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선배님에게 누를 끼치지 않은 선에서 저만의 고윤주도 보여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실제로 박경리와 한고은 싱크로율(캐릭터 완성도나 정확도)은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른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편집 과정에서 두 사람이 연기하는 고윤주 캐릭터 이질감은 크지 않았다. 그 과정에는 첫 정극이니만큼 단단히 준비한 박경리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잖아요. 많은 자료를 찾아봤어요. 스타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과거를 연기하다 보니 요즘 스타일로 한정된 제 이미지가 걸림돌이 될까 걱정했어요. 80·90년대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감독님, 스태프와 최대한 90년대 고윤주를 완성하는 데 노력했어요. 덕분에 두피가 조금 상하기도 했어요.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COVID-19) 여파로 촬영 일정이 다소 변경되다 보니 염색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그 과정에서 두피가 상하더라고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한 ‘영광의 상처’가 아닐까요. (웃음) 더 열심히 노력하는 훈장으로 생각하고 잘 관리하고 더 공부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노력은 빛나기 마련이다. 쉽지 않은 연기를 펼친 박경리에게 팬들과 지인, 나인뮤지스 멤버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웹드라마를 했을 때 팬들 반응은 좋지 않았어요. 제 캐릭터를 알기에 뭔가 어색함을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경리 연기도 볼만하네’라고 하세요. 제 공백이 길다 보니 저에 대한 애정을 담아주는 격려 같아요.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요. 평소에 직언만 하던 친구도 제가 이 작품을 어떻게 준비하고 노력했는지 아니깐 응원하고 격려해줘요. 이런 반응은 처음이에요. 멤버들도 ‘박 배우’라고 응원해줘요. 금조는 ‘연기 처음이어도 분명히 잘할 거로 믿었는데, 너무 멋있더라. 시트콤 연기도 보고 싶다’고 해줬어요. 민하는 ‘언니 옷을 입은 것 같은 캐릭터였어. 나중에 첩보물 찍어 주면 안 돼?’라고 해요. (웃음) 애린 언니는 ‘배우 눈을 봤다. 우리 박 배우’라고 엄지를 치켜세워줬어요.”
많은 응원 박경리가 성장하는 자양분이다. 하지만 그간 박경리를 향한 곱지 않은 시각도 많았다. 한정된 이미지가 바로 그것.
“사실 한동안은 많이 힘들었어요. 안 좋은 댓글을 쓰시는 분들이 소수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만 보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쓴소리도 아니고 참아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도 꿋꿋하게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사람들 덕분이에요. 힘이 나요. 가장 행복했을 때가 콘서트 때였어요. 우리 공연을 보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우릴 선택해서 오신 거잖아요. 멀리서 오는 사람도 있고, 나이대도 다르고요. 콘서트 당일을 위해 모이는 그 자체가 멋있고 희열을 느끼게 해요. 촉발하게 준비해야 하는 무대도 있는데 객석을 보면 실수 없이 하게 되는 힘이 생겨요. 온몸에 에너지가 넘쳐요. 그런 팬들 응원 때문에 제가 지금도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빨리 코로나19가 끝나 팬들과 만나고 싶어요.”
가수로서 제 색깔을 완성해가던 박경리에게 연기자 전향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늘 초심이에요.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끔 좀 내려놓으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해요. 5년 뒤요? 지금의 초심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여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촬영장에서 긴장하고 떠는 이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능숙하게 현장을 즐기는 박경리가 되고 싶어요. 아직 부족한 것을 제가 너무 잘 알아요. 이제 시작이니 지켜봐 주세요. ‘언더커버’를 통해 제 연기를 봐주고 응원해 준 시청자들에게 감사하고, 다른 작품에서 저를 보게 되더라도 반가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발전하는 연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