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CJ ENM
24일 개봉하는 영화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목숨을 건 여정을 그린다.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함께 거사를 모의했던 독립군들의 갈등과 이해관계, 고뇌 등 다층적인 면까지 꼼꼼히 담아냈다. 특히 끌어내린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대한 악에 맞서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국민의 목소리가 중요해진 최근 시국과 맞물려 더욱 깊은 감동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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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로맨스 드라마에서 활약해 왔던 현빈은 이번 영화를 통해 연기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중근을 온몸으로 체화해 낸 듯한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
특히 그는 전장에서 세상을 떠난 동지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가져온 비극적 일들에 대한 후회, 앞으로 해내야 할 임무에 대한 걱정, 지도자로서 책임감과 외로움 등 결연한 ‘투사’ 안중근보다 ‘인간’ 안중근이 느끼는 감정들을 더욱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온몸을 웅크린 채 흐느끼는 안중근의 모습은 그 어느 작품에서 표현한 적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관객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안중근 의사의 인생 중에서도 가장 극적이었던 시기를 연기하면서도 관객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식의 감정 과잉이나 신파에 귀결되지 않는 절제되는 연기를 펼치지 않는다는 점도 돋보인다. 안중근이 하얼빈 거사 이후 귀순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최후의 장면에도 마찬가지다. 우민호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은 그런 현빈의 절제된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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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의 여정을 생생히 그리기 위해 무려 3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몽골·라트비아·한국 3국을 오가는 대규모 해외 촬영을 진행한 영화는, 꽁꽁 언 광활한 두만강 한복판을 나홀로 걷는 안중근의 모습을 담은 영화의 첫 장면부터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스크린 가득히 담기는 푸른 빛의 설원과 거대한 사막은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하얼빈’의 특별한 점은 이러한 거대한 스케일을 단순히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넓디넓은 광활한 로케이션 사이에 우뚝 선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이들이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을 더욱 극대화하며 관객의 마음에 가닿기 때문이다.
전투 장면도 마찬가지다. 독립군과 일본군이 진창에 뒹굴면서 사력을 다해 서로에게 총부리와 칼을 겨누는 장면은, 액션신이 주는 쾌감이 아닌 전투에 임하는 이들의 처절함과 전쟁의 끔찍함을 강조해 드러낸다.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전장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반면, 안중근이 기차를 오가며 동지들 사이에 숨어있는 밀정을 색출하는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엄청난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기차 안에서만 이뤄지는 좁은 동선과 최소화된 움직임,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표정, 무엇보다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음악 등 모든 것들이 완벽한 합을 이뤄 첩보물 장점을 최대로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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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은 영화는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 투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임에도 ‘잘못된 리더’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재의 탄핵 정국과 맞물려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특히 영화 속 일부 대사는 마치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라는 일본의 명배우 릴리 프랭키가 연기한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영화의 엔딩, 현빈에 깊이 있는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안중근의 대사는 더욱 가슴을 친다. “어둠은 짙어 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