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 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 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유례없는 한파를 맞은 우리 영화계. 매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던 ‘1000만 영화’는 끝내 자취를 감췄고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 대작들마저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독립·예술 영화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충무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해 냈다.

●대작은 무너지고, 독립영화는 버텼다

올해 한국 상업 영화의 침체는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500만 관객을 간신히 넘긴 ‘좀비딸’이 연간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제작비 300억 원 규모의 ‘전지적 독자 시점’을 비롯한 대작들이 잇따라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극장가 전반에는 ‘한국 영화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렇듯 침체된 극장가의 이면에서는 전혀 다른 흐름도 포착됐다. 대작들이 주저앉은 자리를 대신해 소규모 영화들이 ‘독립·예술영화의 꿈의 숫자’로 불리는 10만 관객을 연이어 돌파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는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이 있다. 상업영화 경험이 없는 신예 배우 서수빈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으며 18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라는 찬사와 함께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독립영화의 저력을 입증했다.

김혜영 감독이 연출하고 이레가 주연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역시 섬세한 감정 묘사와 진정성 있는 연출로 입소문을 타며 11만 관객을 동원했다.

사진제공|쇼박스·롯데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쇼박스·롯데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의 또 다른 해답

10만 관객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묵직한 울림으로 주목받은 작품들도 있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한란’(하명미 감독), 노인 빈곤 문제를 경쾌하게 풀어낸 ‘사람과 고기’(양종현 감독), 소년의 성장통을 섬세하게 담아낸 ‘여름이 지나가면’(장병기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독립 애니메이션의 약진도 눈에 띈다. 2월 개봉한 ‘퇴마록’은 아동 중심이던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한계를 넘어 성인 관객층까지 끌어들이며 50만 관객을 돌파, 올해 독립·예술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웹툰 원작의 서정적 애니메이션 ‘연의 편지’ 역시 22만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다.

상업과 독립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도 주목받았다. 대표적 상업 영화 감독인 연상호 감독은 제작비 3억 원 규모의 저예산 영화 ‘얼굴’을 선보이며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이야기와 연출에 집중한 전략이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독립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관객은 여전히 좋은 영화를 알아본다”며 “대규모 자본보다 창작자의 문제의식과 진정성이 관객을 움직이고 있다. 올해 독립영화들의 선전은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