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쿠팡플레이

사진제공 | 쿠팡플레이


[스포츠동아 장은지 기자] 올망졸망 아기천사 같은 아역 배우로 전국민적 인지도를 쌓은 김향기는, 학교폭력 피해자 천지(우아한 거짓말)를 지나 위안부 피해자 종분(눈길), 그리고 저승사자 덕춘(신과 함께)까지 일부러 억세고 모난 자갈밭만을 골라 걸으며 그를 둘러싼 핍진성을 온몸으로 깨부숴 왔다.

조막만 한 얼굴과 대비되는 비대한 심장으로 데뷔 20년 차를 맞이한 관록의 배우. 김향기가 오랜 시간 몸담은 익숙한 장르물을 잠시 벗어나, 코미디라는 미지의 세계에 마침내 첫발을 내디뎠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 있었죠.”
김향기가 맡은 주인공 의주는 현실과 그가 쓰는 BL 소설이란 ‘극 속의 극’ 두 가지 세계를 모두 관찰하고 관장하는 전지전능의 화자다. 이 엉뚱하고 발칙한 세계관의 균형을 잡아내는 막중한 임무는 온전히 쌍천만 배우 김향기에게 맡겨졌다.

이름 앞에 붙는 수식과 책임이 늘수록 배우는 그 단어들에 종종 옭아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김향기는 그간 자신의 필모그래피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와도 같던 이번 작품에서 오히려 끝 모를 자유로움을 느꼈다.

“코미디 연기에서만큼은 아예 ‘제로’(0)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오히려 즐거웠던 것 같아요. 배울 점이 많다는 게 좋았죠.”

표현이 어디까지를 넘어가면 과한 건지 ‘정도’를 알기도 어려웠다. “제가 할 수 있는 코미디의 한계치가 어디인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에너지의 최대치를 다 쏟아붓고나서 감독님과 조율해 가면서 덜어냈던 것 같아요.”

‘낮에는 평범한 학생, 밤에는 판타지 설계자’인 여의주의 독특한 외형을 완성한 것 역시 김향기였다. 단정한 학생의 모습보다는 10대 특유의 삐죽삐죽한 에너지가 살아있길 원했던 그는 직접 처피뱅 스타일의 앞머리와 뻗친 머리 모양을 아이디어로 냈다.

연기적으로는 ‘웃기려고 노력할수록 웃음이 반감’되는 코미디의 역설을 새기고 또 새겼다. 웃기려 애쓰기보다 의주의 상황에 지독하게 몰입하는 것이 그가 찾은 정답이었다. 그는 변비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도 웃겨서 몰입에 방해되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진짜 배가 아프다고 생각하니 안 웃기고 심각해지던데요? 그렇게 인물의 상황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웃음이 유발되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완성됐던 것 같아요.”(웃음)

배우로써 긴장도를 낮추기 위해 그가 맡은 어떤 역할이든 어느정도의 공통점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그는 여의주와 자신의 싱크로율이 50% 정도라고 했다. 선생님을 짝사랑한 마음에 공감한다고 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요? 그 시절 선생님을 짝사랑한다는 게 결국 동경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을 멋지다고 생각했죠. 제가 고3때 연예계 활동을 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을 많이 하고 위축된 게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많이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셨거든요.”

사진제공 | 쿠팡플레이

사진제공 | 쿠팡플레이


연기는 나에게 ‘평생 친구’

극 중에서는 김향기가 고교생, 차학연을 비롯한 남성 연기자들이 교사였지만, 도리어 현장에서는 이들의 위치가 뒤바뀐 듯한 모습도 종종 연출됐다.

오랜 연기 경력 탓인지 스태프 가운데 일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부르기도 했다는 그는 같은반 학생들을 연기한 신인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도 돌아보게 됐다고 돌이켰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은 제가 좀 애매한 위치라고 생각해요. 완연하게 성숙한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어리지만도 않고….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지금이 제게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연기란 그에게 ‘평생 친구’ 같은 존재라고도 덧붙였다. 오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친구와 때론 격렬히 부딪히고 때론 거리를 두기도 하듯, 김향기 역시 막힐 때마다 더 비워내고 쉬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지금 그는 ‘코미디라’는, 연기의 또 다른 면을 새롭게 익히는 중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코미디에 대해 자신감이 생긴 것까진 아니지만,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좋은 코미디 작품이 있다면 또 도전하고 싶어요.”


장은지 기자 eun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