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어머니 생신이 있어 저희 식구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어서 그런지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 자리에, 다른 누나와 동생들은 전부 식구들을 데리고 왔는데, 유독 큰 누나만 혼자 왔습니다. 왜 혼자냐고 물었더니, 매형은 바쁘고, 조카들도 약속이 있어 못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큰 누나의 얼굴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너무 너무 반가웠습니다. 맏이인 큰 누나는 항상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저와 동생들을 돌봐주었습니다. 특히 일곱 살 차이가 나는 저를 늘 업고 다녔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내 동생 예쁘지요? 이제 두 살인데 울지도 않고, 밥도 잘 먹고, 잘 자요” 하면서 자랑을 해 어른들께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보면 큰 누나가 제 볼에 누나 볼을 비비며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쁘니? 아이고 귀여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공들여 낳으셔서, 분명 알게 모르게 저와 누나들을 편애하신 일도 많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큰 누나는 그런 편애도 질투하지 않고 늘 저를 예뻐해 주었습니다.
누나가 성인이 되고, 시집을 가서도 늘 밝고 호탕하게 살았습니다. 매형이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매형이 일어 설 수 있게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조카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조언도 잊지 않고 해주었습니다. 화내는 거 한 번 본 적 없고, 늘 씩씩하고 강인하게만 보였던 누나였는데, 이상하게 그 날 저녁 술자리에서, “나도 한잔 가득 좀 따라봐” 하며 웬일로 술 마시는 자리에 빠지지 않고 앉으셨습니다.
제가 “누나 웬일이야? 원래 술 잘 못 하잖아? 뭐,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하고 물어봤더니, 누나는 “그냥” 이렇게 대답하면서 마치 술이 꽤나 고팠던 사람처럼 벌컥벌컥 술을 마셔댔습니다. 연거푸 두 잔 맥주를 비워 내면서 입가를 훔치는 누나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가족 모임이 있어도 누나는 늘 건배만 하고 잔을 내려놓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술 반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에서 별이 보인다고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연거푸 두 잔을 들이키는 걸 보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전 그 날 누나 옆으로 바짝 다가가서 “누나 진짜 별일 없어? 왜 그래? 술도 못 마시는 누나가 맥주를 두 잔이나 마시고…” 하고 슬쩍 물어봤습니다. 누나가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일은 무슨… 나는 친정 와서 술도 한잔 못 마시니? 진짜 아무 일도 없어. 그런데, 그냥… 마음이 좀 답답하고 그러네. 내 나이 오십이 넘도록 여태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애들은 내가 없어도 이제 별 불편함도 없고 찾지도 않고 말이다. 이제 난 뭘 해야 되는지 그런 생각이 들어. 그리고 왜 그렇게 아픈 데가 많니? 우리 엄마가 예전 내 나이였을 때 여기저기 안 아픈 데 없다고 하면 내가 모른 척 하고 그랬는데, 이젠 엄마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냥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쓸쓸하고, 외롭기도 해. 그런데 너희 매형은 내 맘을 몰라주고, 그냥 힘들다” 이렇게 길게 넋두리를 했습니다.
지금껏 제가 아는 누나는 늘 씩씩해서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줄 알았습니다. 맥주 두 잔에 외로움을 토로하는 누나를 보며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동생들에게 늘 좋은 모습만 보였던 누나였는데, 요즘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을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괜히 술잔만 비웠습니다. 우리 누나, 제게도 너무 소중한 사람이고 조카들이나 매형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누나가 그걸 모르고 혼자 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누나 다시 기운 내서, 예전의 씩씩한 모습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번 만날 땐 진짜로 즐거운 마음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충남 예산|이태수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