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오기사운전해~어서~”

입력 2008-06-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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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랑과 2년간 연애하고 결혼해서 지금 맞벌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회사 언니들이 오랜만에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신랑한테, “자기야. 회사 언니들이 술 한 잔 하고 가자는데, 나 마셔도 괜찮지?” 하고 물어봤습니다. 마음에 안 들었던지 퉁명스럽게, “술 마시는 건 좋은데, 대신 늦지 말고 빨리 와. 알았지?” 하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더운 여름날이었고, 오랜만에 가진 술 자리였습니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12시를 훌쩍 넘겨 버리고 만 겁니다. 벌써 집에 가는 차는 끊겨버렸고 제가 어떻게 가야하나 걱정을 했습니다. 언니들이 자꾸 “신랑한테 전화 한 번 해 봐. 데리러 오라고 그래”하면서 옆에서 시키는 겁니다. 제가 그 때 술이 취하긴 취했던 모양인지, 갑자기 신랑을 언니들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신랑의 애정도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혀 꼬인 목소리로 “자기야∼ 있잖아. 나 마시다보니깐 이 시간까지 마시고 말았는데, 혹시 나 데리러 오면 안 될까? 여기 언니들이 자기 보고 싶다고 꼭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자기 나 데리러 올 수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화가 잔뜩 나서 “뭐야! 내가 분명히 일찍 오라고 했지? 이 시간까지 거기서 술이나 마시고 있고 당신 제정신이야!” 이러는데,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겁니다. 저는 당황해서 “어 미안해.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돼! 나 혼자 어떻게 가볼게” 했더니 신랑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이 시간에 뭘 타고 오겠다는 거야∼ 거기 어디야?”라면서 화를 냈습니다. 저는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포장마차 위치를 알려주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언니들도 제 통화를 듣고 걱정스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금방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조용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1시간 쯤 후, 신랑이 왔는데 언니 중에 한 명이 웃으면서 “저기요. 연숙이가 전화 안 한다고 그러는 걸 저희가 신랑 분 얼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시킨 거예요.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라고 하면서 수습을 했습니다. 신랑은 바짝 얼어서 “아… 아닙니다. 저 화 안 났습니다” 이러면서 억지로 웃음까지 지었습니다. 저는 이따 갈 때, 신랑한테 잔소리 들을 게 걱정돼서 잘 웃지도 못 하고 계속 신랑 눈치만 보고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30분 후, 저희 부부는 먼저 일어서게 됐습니다. 차 안에서 신랑이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당신! 다음에 또 이러면 국물도 없는 거야∼ 알았어?” 하면서 말을 걸어줬습니다. 사실 저도 그 때는 반성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나 같아도 화가 났을 거야. 신랑한테 일찍 들어오라고 했는데 술 실컷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거기다 나보고 데리러 오라고 하면, 그게 얼마나 화가 나겠어’이러면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얼마간은 이상하게 밤늦게까지 술 마실 일이 많이 생겼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신랑을 불러서 집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매번 신랑은 “지금 뭐하는 거냐∼”고 화를 냈지만, 늘 제가 술 마시고 있는 곳으로 데리러 왔습니다. 이제는 회사 회식 자리에서 신랑이 저를 데리러 오는 건 아주 자연스런 일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서 회식 날이면 자연스럽게 이사님과 부장님께 인사도 드렸더니, 그 후로는 이사님도, “오늘 회식 때도 신랑이 데리러 오나?” 하셨고, 저는 그 때마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이사님이 “참 신랑이 착해. 인상도 정말 좋던데, 연숙 씨는 신랑 하나는 정말 잘 만난 것 같아” 하고 말씀해 주실 때는 저도 모르게 행복을 느꼈습니다. 제 주변사람들은 신랑의 성씨인 ‘오’씨를 따서 “오늘도 오 기사님 오시는 거야” 이렇게 부른 답니다. 신랑은 모르지만, 저는 신랑이 운전할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부릅니다. “오 기사 운전해∼ 어서∼!!” 정말 제게는 너무나 든든한 오 기사랍니다∼ 경기 용인|이연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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